주지훈 김강우 주연의 한국형 블록버서트 '간신'이 19금 사극의 새 장을 열어젖히고 있다. 개봉후 입소문을 타며 관객들 발길을 이끌면서 롱런 가도로 접어드는 중이다. '한국영화에서 이 정도 성적 묘사가 가능했나' 싶을 정도로 야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와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기존 에로물들과 선 굵은 차별을 뒀다.
무엇보다 영화계에서는 '간신'이 영등위의 무자비한 가위질을 피한 게 화젯거리다. 비록 스쳐지나가는 장면이기는 하나 여자 출연자의 주요 부위가 그대로 노출되는 데다 연산이나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이 여체를 탐하는 베드신 수위는 소프트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특히 연산이 자신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궁녀들에게 동성애를 강요하는 신과 흥청 선발을 위해 성교의 기술을 가르치는 내용에서는 객석에서 숨을 참는 침묵과 입술을 뚫고 새어내오는 신음이 교차하기 일쑤다. 그만큼 '간신'은 세고 강하다.
'간신'이 영등위의 금제를 벗어나 한국영화 19금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건 영화의 힘 덕분이다. 외설 아닌 예술로 평가받을 만한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호연의 3박자를 갖췄기에 가위질도 비껴나갔다. 민규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또 '더 이상의 연산은 나올 수 없다'는 김강우의 호연과 야누스적 간신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주지훈, 요염하고 청순한 팜므파탈 임지연의 섹시한 매력도 작품에 힘을 더했다.
이 영화는 연산군 11년, 조선 팔도의 1만 미녀를 강제 징집한 사건을 그려낸 작품. 조선 3대 간신으로 꼽히는 임사홍-임숭재 부자가 색에 빠진 연산군을 쥐락펴락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엇갈린 사랑과 궁내 정치를 다뤘다. 주지훈이 연산군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권력을 탐하는 임숭재 역을, 김강우가 다방면으로 미쳐있는 광기 어린 연산군 역을 맡았으며 임지연이 백정 출신으로 왕을 품에 안고자 욕망하는 단희로 분했다.
# 기대 이상의 자극성
이 영화는 왕을 성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전국에서 징집된 운평이라는 소재와 폭력적으로, 성적으로, 예술적으로 미쳐있는 연산군의 광기를 그려내며 강도 높은 자극성을 선보인다.
단순히 야한 게 아니라, 당시 운평들이 성감을 높이기 위해 받았던 수련들을 재현해 정보, 코미디를 버무려 기존 에로틱 사극과는 또 다른 결을 만들어냈다. 연산군의 폭정 역시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잔인함에 성적인 광기를 버무려 폭력성과 선정성이 얽히는 지점을 구축해냈다.
연산군이 기분에 따라 아무 여자나 겁탈하고, 장녹수의 품에 안겨 가슴을 빨거나 시퍼런 칼을 들고 여성들의 치마를 들추는 모습이 공포스럽게 그려지고, 여성들이 각종 체위를 연습하거나 수박을 깨면서 허벅지 힘을 기르는 모습은 코믹하게 그려지는 것.
영화는 이 양쪽 분위기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타면서, 자극성을 단순 볼거리로만 전락시키진 않았다.
# 진짜 하고픈 얘기는 삶의 자세
수위가 높다고 해서 흥행이 되는 시절은 갔으나, 이 영화는 삶의 자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현재를 돌아보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데에도 성공한다.
임숭재가 연산군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하는 상황을 다수 연출해내는 것. 시종일관 동일한 성격을 갖고 움직이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임숭재는 수시로 갈등하고 고민하고 변화하면서 자극성이 두드러지는 이 영화의 중심점 역할을 한다.
관객 취향에 따라 임숭재의 입장에 이입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이 난이도 높은 역할을 소화해낸 주지훈의 연기력은 상당히 발전해 놀랍다.
매우 과한 광기를 전혀 과장되지 않게 그려낸 김강우의 연기 역시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압도해버릴 정도며, 임지연이 선보이는 다양한 농염함 역시 인상적이다. 이들 자극성에 함몰되지 않고, 할말을 전달하는 민규동 감독의 균형 감각 또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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