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뢰한'(연출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쳐스)은 전도연의 영화다. 투박한 세계에서 전도연이 빛처럼 떠오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친 세상을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김남길이다. 그는 영화를 열고 닫으며 전도연이란 무게를 온전히 버텨내는데, 얼굴과 대사 보다 뒷모습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무뢰한'은 형사 정재곤(김남길)이 이른 새벽, 지친 얼굴로 살해 현장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화면은 그의 구부정한 등과 힘 없는 걸음걸이를 잡아내는데, 그의 뒷모습에는 주체할 수 없는 피로와 무료가 쌓여 있다. 용의자 박준길(박성웅)을 잡기 위해 그의 여자인 변두리 술집 마담 김혜경에게 접근하는데, 김혜경을 집요하게 쫓던 정재곤은 어느새 그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정재곤은 결코 '멋진' 남자 주인공이 아니다. 김혜경을 부당하게 조사하려는 선배(곽도원)을 저지하지만, 그때 뿐이다. 속내를 도통 알 수 없는, 이기적인 남자다. 그가 진심을 드러내는 순간은 취조실에 있는 김혜경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착각할 때와 김혜경에게 몸에 난 상처를 내보일 때 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안전한 선택을 한다.
그렇다. 비겁한 남자, 그것이 정재곤이다. 이혼한 전 아내에게 제멋대로 구는가 하면, 김혜경의 '약점'인 박준길에게 묘한 질투를 느낀다. 박준길을 제거해 달라는 건달들의 부탁을 비웃지만, 그들이 입금한 금액이 고작 48만원이란 사실에 화를 낸다. 마지막 김혜경의 '반격'에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이어지는 정재곤의 새해 인사는 어쩐지 초라하다.
이처럼 '멋지지 않은 남자'를 연기하는 이는 김남길이다. 출세작인 MBC 드라마 '선덕여왕'부터 지난해 개봉한 영화 '해적'까지, 늘 멋졌던 그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고 결핍 많은 남자가 됐다.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는 오승욱 감독은 김남길에 대해 "참 좋은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소년 같은 모습부터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무뢰한'은 결코 로맨틱한 영화가 아니지만, 이 영화가 하드보일드 '멜로'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른 새벽 정재곤은 김혜경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고개를 든 그에겐 아픔이 가득하다. 집으로 들어가던 김혜경의 발을 붙잡은 것도 정재곤의 슬픈 뒷모습이다. 그의 말과 얼굴은 내내 진심을 감추지만, 적어도 그의 등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묘하게 모성애를 자극한다.
등으로 연기하는 이 남자, 김남길. '무뢰한'에 매혹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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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