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극 성격이 짙은 KBS 2TV 종영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송재림(30)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3대에 걸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휘청이는 인생을 버티면서 겪는 사랑과 성공, 행복 찾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김혜자와 채시라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 가는 길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그럼에도 송재림은 이 작품 속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루오(송재림 분)는 가슴 속 남모를 상처를 지닌, 여자들에게 무심하고 까칠한 무뚝뚝한 성격. 하지만 어느 순간 반한 마리(이하나 분)에게 직진하는 루오는 여심을 저격하는 온갖 멋진 대사를 독점하면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송재림은 누나를 내 여자라 부르는 루오의 진중하고 멋진 매력을 충실히 소화해내며 시선을 고정하게 했다.
송재림과 이하나가 등장할 때마다 '착않여'는 새로운 장르로 돌변했다. 청춘의 설렘 가득한 로맨스는 화면을 따뜻하게 채웠고, 송재림과 이하나, 김지석의 쉽지 않은 삼각로맨스는 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사랑을 통해 어떤 성장을 그려낼지 관심을 모았다. 이들은 부모대부터 엮인 악연으로 인해 러브라인의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없게 했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됐다. 송재림은 이에 대해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말 그대로 열린 결말을 사용하셨다. 선배님들의 주플롯의 이야기는 오밀조밀했다. 여기에 작가님의 필력으로 여성들의 심리와 블랙코미디를 세밀하게 풀었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에너지에 맞게 굵직굵직하게 풀어갔다. 대본에 나오는대로 해석해서 연기하니까 감정선이 컸다. 큰 진폭을 닫힌 결말로 막아버리면 닫히고도 찝찝한 강요를 받을 것 같았다. 진폭이 컸던 젊은 배우들인 만큼, 결말도 열어두는 편이 시청자에 여운이 남는 게 아닐까, 그것 또한 필력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아쉬움은 없다."
특히 송재림은 김인영 작가는 물론, 유현기 한상우 등 연출자들의 섬세한 포인트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감독님들이 그림을 잘 그리신다. 포인트를 잘 살려주셨다. 작가님의 글을 영상화 시켜서 스토리텔링 해주시는데, 섬세한 포인트가 있다. 루오가 오글오글한 대사를 많이 했다. 길에서 마리에게 '나는 내 가슴과 머리에 당신으로 가득차 있는데, 당신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고민을 많이 했다. 감독님들이 감정 전달에 힘을 주셨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초반부에 나온 벽치기 장면이다. 벽을 치며 마리와 근접해졌던 그 장면이 가장 만화적이었다. 만화를 좋아한다."
송재림은 함께 삼각 관계 호흡을 맞춘 이하나, 김지석과 카메라 밖에서 더 친하게 지냈다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하나는 카메라 안이나 밖에서 크게 차이점이 없는 배우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성격상 나와 맞는 부분이 많았다. 극중 젊은 크루는 우리 셋 뿐이었다. 단톡방에서 서로 이야기 하고 다독였다. 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카메라 안보다 밖에서 더 친했던 것 같다."
또한 송재림은 이 작품에서 덜어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전작 '감격시대'에서 모일화의 캐릭터에 배우 송재림을 추가하는 식의 연기를 펼쳤다면, 이번에는 배우 송재림을 덜어내고 이루오, 그 캐릭터 자체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설명이다.
"현장에 가면 늘 부담감을 느끼는데, 이 작품에서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면 튈 것 같았다. '착않여'는 가족극의 성격을 가진 중편 미니다. 젊은층들이 하는 색깔 있는 연기나 완숙하지 않은 캐릭터를 고집 하다 보면, 선생님들의 점잖은 색깔과 맞지 않은 이질감이 드는 색이 나올 것 같아 내 고집을 접어뒀다. 감독님이 주문하는 대로 연기했다."
"'착않여'는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현장이었다. 연기적으로 눈과 귀를 많이 열어뒀다. 나를 좀 더 비우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많이 했다. 내 것이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 현장은 아니었다. 선배들을 따라가고, 그분들의 색깔에 최대한 튀지 않고 조용하게 연기를 하고 싶었다. 젊은 캐릭터가 리드하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최대한 많이 배우는 게 목표였다."
송재림은 '착않여' 작품에 참여하면서, 사람 송재림과 배우 송재림 사이에서 고민했던 자신의 답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도 밝혔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떤 작품보다 많이 배웠다. 모이기가 쉽지 않은 선배님들이다. 그런 분들하고 두 번 작업할 수 있을까, 싶다. 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배우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 송재림이 배우 송재림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있었다. 김혜자, 채시라 등 선배님들에게서 융화가 된 완성체 모습을 봤다. 내가 그 전에 양분화 시켜서 생각했던 걸 합치는게 숙제였는데, 숙제를 안고 있는게 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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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