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오늘(30일) 반인권적인 국가 폭력의 뼈아픈 사례로 꼽히는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을 다룬다.
24년 만이었다. 강기훈 씨는 지난 14일 유서를 대필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1년 5월 강기훈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총무부장은 동료였던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파렴치한으로 몰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는 김 씨 유서와 강 씨 진술서 필체가 같다는 감정을 했다.
강 씨는 그해 자살방조죄로 재판을 받았고, 다음 해 징역 3년 확정 판결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유서 필체와 강 씨 필체가 동일하지 않다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강 씨는 다음 해인 2008년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은 강 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 대법원에 항고했다. 강 씨는 2012년 10월이 되어서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리고 재심 청구 7년 만인 지난 14일 무죄 판결을 받으며 악몽에서 벗어났다. 언제나 무죄를 주장했던 강 씨는 현재 간암 투병 중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강 씨 사건을 주목한 것은 1993년 10월이었다. 당시 ‘유서 대필 사건’의 의문점을 방송에 내보내려고 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 하루 전 불방이라는 비운을 겪었다. 이후 1998년과 2007년 이 사건의 진실 공방을 추적한 바 있다. 이번에는 무죄 판결로도 씻을 수 없는 강 씨의 상처,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아래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팀장인 정철원 PD와의 일문일답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건을 다시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비롯해 그동안 이 사건을 다뤘던 선배 PD들은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너무 많다고 판단을 했을 것이다. 결국 무죄로 진실이 밝혀졌지만 남의 유서를 대필한다는 일은 흔히 있는 사건의 범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인 강 씨와 변호인들이 제출한 무죄 증거에도 재판까지 일사천리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필체도, 강 씨의 사건 당일 동선도 달랐다. 그런데 실제 재판에서는 이 모든 게 배제됐다.
당시 이 사건이 가진 상징성이 컸다. 강 씨가 유서를 대필했다고 증명되는 순간,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재야 세력이 도덕적으로 타격을 입는 거다. 죽음으로서 정권을 향한 비판을 한 정당성에 흠집이 난다. 당시 정치 맥락을 되짚어보면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어느 사건을 바라볼 때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이상한 미스터리가 있다면 파헤치는 일부터 한다.
-이번 방송에서 무엇을 중점적으로 파헤치나.
과거 핵심적인 진위 공방은 선배 PD들이 다룬 부분을 활용한다. 선배 PD들에게 빚을 많이 질 것 같다. 다만 이번에 무죄 판결이 났기 때문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한다.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하고 이 무리한 기소를 잡아내지 못한 법원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사법부의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판사들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를 다룰 것이다.
강 씨의 사건은 당시 검사만 9명이었다. 단일 사건으로는 상당히 많은 검사였다. 그리고 재심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3년 넘게 걸렸다. 검찰은 이 재심 결정이 부당하다고 항고했다. 대법원이 강 씨의 무죄를 판결하는데 3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강 씨는 간암을 앓고 있다. 검찰은 인권 옹호라는 또 다른 책무가 있다. 검찰이 왜 반성을 하지 않느냐에 대한 문제도 다룰 예정이다.
-강 씨와 그리고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검사, 판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나.
앞서 두 차례 방송은 강 씨를 모두 만났다. 다만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다. 국가 권력에 의해 폭력을 당한 분이다. 무죄를 밝혀내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간암 투병 중이기도 하고, 심적으로 많이 지치시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정중하게 출연 요청을 드렸는데 만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당시 검사와 판사 대부분도 인터뷰를 거절했다. 과거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취재를 했던 부분도 이번 방송에 포함했다. 국과수는 감정에 오류가 있었다고, 검찰은 국과수 감정이 틀렸다는 등 서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답답할 뿐이다.
-제작진이 방송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번 방송의 부제는 ‘누가 그를 모함했나’이다. 어떻게 무죄 판결을 받았는지, 그리고 24년 전에는 왜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개입했는지 다룰 것이다. 언론이 하는 일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너무 많은 국가기관이 이 사건에 부자연스럽게 개입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을 넘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사회 구조다. 책임질 사람을 묻는 질문이 이번 방송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끊임없이 이 사건을 다루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1000회를 앞두고 있는데 탐사 보도 프로그램으로서 장수하는 원동력 아닌가.
현재 이 프로그램의 박두선 부장과 교양국 민인식 국장 등이 이 사건을 방송한 적이 있거나 처음부터 지켜본 이들이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시청자들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시청자들과 함께 고민을 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도 벌어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궁금한 사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제작진의 생각이 개입되는 게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라는 절차를 밟으며 사실을 파헤치는 거다. 물론 1시간 방송을 만들다 보면 이야기를 만드는 유혹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입견을 배제하는 게 중요하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jmpyo@osen.co.kr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