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뢰한'(연출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처스)은 불행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열쇠 일곱 개를 손에 쥘 사주"이지만 문제는 주변에 머무는 남자들이다. 살인자가 돼 도망 다니는 신세이거나 입만 열면 거짓말인 남자 뿐이다. 여자를 사랑하다고 하지만, 무뢰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이다. 박복도 이런 박복이 없다.
특히 그의 남자친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김혜경(전도연)은 현재 변두리 술집 마담에 불과하지만 한때 강남에서 잘 나가던 '텐프로'였다. 그럴싸한 남자의 첩으로 살아도 비교적 평탄했을 것을, 칼잡이 박준길(박성웅)과 눈이 맞아 갈등의 중심에 섰다. 박준길은 어느 날 느닷없이 사람을 죽이고, 연락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자신을 술집에 맡기고 받아간 돈으로 도박장을 전전한다.
압권은 김혜경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다. 경찰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 박준길을 잡기 위해 그의 여자 김혜경을 주목하고, 김혜경은 그로인해 모텔로 불려가 끔찍한 일을 당할 뻔한다. 이후 불쑥 나타난 박준길은 "미안하다"면서 "한 삼천만 만들어 봐라"고 한다. 동반 중국 도피를 운운하지만, 믿기 힘들다. 그 상황에서 김혜경은 억지로 웃으며 "만들어 볼게"라고 답한다. 보는 이의 마음이 답답해지는 순간이다.
한편으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남자다. 김혜경 얼굴의 멍을 보고 버럭하거나,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김혜경을 감싸는 모습에서 김혜경에 대한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박준길이 사람을 죽인 이유도 김혜경에서 시작된다. 김혜경이 연락 없는 남자를 기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준길이 적어도 일부분 멋진 면모를 가진, 남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사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준길을 연기하는 박성웅의 힘이 더해진다. 187cm의 큰 키에 다부진 체격 등 외양에서 묻어나는 강인함,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등 박성웅이란 배우가 지닌 미덕은 박준길의 남성성을 강화시킨다. 늦은 밤 주차장에서 총을 든 정재곤(김남길)과 맨몸의 박준길이 대치하지만, 박준길이 우세해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준길이 세상에 또 없을 나쁜 남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작정 미워할 수 없는 까닭은 박성웅에 있다.
오승욱 감독에 따르면 오 감독은 술자리에서 만난 박성웅에게 '무뢰한' 출연을 제안했고, 박성웅은 내용도 분량도 모른 상태에서 이를 승낙했다. 이렇게 박성웅이 박준길 역으로 합류하면서 당초 작은 역할이었던 박준길의 비중은 조금씩 늘어났다. '무뢰한'은 두 남녀의 이야기이지만, '나쁜 남자' 박성웅이 있어 그들의 이야기에 설득력이 부여된 셈이다.
jay@osen.co.kr
'무뢰한'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