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김태호 PD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어느 순간 멤버들 사이에서 사기꾼이 된 김태호 PD는 해외 포상 휴가를 미끼로 멤버들을 비행기에 태운 후 살떨리는 ‘극한 업무’를 부여했다. 멤버들의 불만 가득한 표정과 격한 항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꾸역꾸역 일을 하는 모습이 왜 이 프로그램이 김태호 PD를 멤버들과 대립하는 갈등 요소로 활용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지난 30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10주년 포상 휴가가 지옥의 ‘극한 알바’로 바뀐 까닭에 분노가 치미는 멤버들의 모습이 담겼다. 일주일간의 태국 휴가를 예상하고 떠난 멤버들은 인도에 가서 빨래를 하고, 케냐에 가서 고아 코끼리를 돌봐야 했으며, 중국에 가서 위험천만한 잔도공이 될 뻔 했다. 물론 잔도공 대신에 멤버들은 험난한 산악 지형을 오르고 내리는 가마꾼이 될 예정이다. 결국 2명씩 짝을 이뤄 해외 곳곳에서 극한의 상황에서 땀을 흘리는 일이 포상휴가로 포장된 셈이다.
출국 전부터 포상휴가일 리 없다고 불신이 가득한 멤버들이었지만 멤버들은 막상 마주한 짜증나는 현실(?)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제작진이 왜 멤버들에게 포상휴가로 속였는지, 그리고 태국까지 가서 다시 ‘극한 알바’ 장소로 떠나는 수고스러움을 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좀 더 방심하게 만들어 뒤통수를 친 제작진에 대한 분노를 키우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었다. 멤버들로부터 대놓고 욕을 먹어 싸우며 만드는 웃음 장치는 지난 10년간 ‘무한도전’ 제작진이 잘해왔던 방식이다.
멤버들 역시 대놓고 제작진이 깔아놓은 사기판을 짜증 섞인 분노를 표현하며 키웠다. 허탈하고 어이없는 사기극에 이 프로그램의 수장인 김태호 PD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언제나처럼 제작진과 멤버들은 대치를 했다. 10년간 연출자이자 또 다른 멤버로서 대립각을 세우면서 재미를 안겼던 김태호 PD는 이날 목소리 출연도 없었지만 ‘미친 존재감’을 보였다. 멤버들이 불만이 쌓일 때마다 자리에 없는 김태호 PD를 찾은 것. 반복되는 격한 항의는 10년간 제작진과 치고박고 싸우며 재미를 만들었던 멤버들이기에 더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 같은 제작진의 사기 포석은 정형돈과 하하에게 보기만 해도 아찔한 잔도공 업무를 부여했다가 다른 업무로 바꿔주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잔도공은 4시간만 하면 되는 업무였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두 멤버들이 할 수 없을 것이며 제작진 역시 다소 위험한 이 일을 시킬 리 만무했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형돈과 하하는 가마꾼으로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이 모습은 일주일 후부터 방송될 예정이다. 누군가는 비록 안전장치가 있지만 제작진이 초보자들이 하기 어려운 잔도공을 시키는 무리수를 벌였다고 하나, 가마꾼을 군말 없이 하게 만들기 위한 포석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 언제나 한번씩 꼬아서 제작 대열을 꾸리는 ‘무한도전’의 몸에 베어 있는 사기 행보와 맞닿는 일이라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10년 동안 본 시청자라면 안다.
스스로 공공의 적을 자처해서 웃음 장치로 만드는 김태호 PD, 이를 모르고 당하고 또 알고도 당한 후 대립하며 재미를 만드는 영민한 멤버들의 모습이 ‘해외 극한 알바’의 흥미를 높였다. 아직 본격적인 극한의 상황에 놓이지 않았는데도 제작진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또 일하는 장소까지 가는 험난한 어려움만으로도 ‘무한도전’은 포상휴가를 포기한 극적 재미를 거뒀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더. 멤버들이 그토록 찾던 김태호 PD는 당시 한국에 있었다. 김태호 PD는 멤버들, 다른 제작진보다 늦게 한국을 떠난 것. 태국 휴가라는 이름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오프닝 촬영’을 진두지휘한 것은 맞지만 다시 상암 MBC로 돌아와 그 주에 내보낼 방송 마무리를 짓고 이틀가량 늦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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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