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수가 없다. 죽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 영화 '산다' 포스터에 담긴 문구다. 이 문구처럼 영화를 잘 표현하는 문구는 없을 듯 싶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 정철(박정범 분)은 영화 내내, 말 그대로 '꾸역 꾸역' 살아간다.
그렇게 꾸역 꾸역 살아가는 사람 앞에 왜 그리 힘든 일은 많이도 닥치는지. 임금을 떼먹고 도망간 팀장 대신 자신에게 돈 독촉을 하는 현장 동료들, 부모님을 잃은 후유증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누나, 누나 대신 돌봐야 하는 어린 조카, 잘 해보겠다고 나선 일은 엉망. 정철의 삶 앞에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굳이 이렇게까지 주인공을 극으로 몰아가야 했을까. '산다'를 연출한 박정범 감독은 그게 극한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했다. 어느 한 쪽엔 이런 극한이 일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작위적일지도 모른다? 그저 관심이 없는 것 뿐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그런 삶이 일상이에요.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런 사람들이 진짜 많잖아요. 영화를 보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영화를 준비하면서 만났던 사람들도 그런 삶들을 살고 있었고 그런 가족들 중 한 명이었어요. 다만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것 뿐이죠."
그래도 '산다'의 마지막은 여운이 남는다. 고개 한 번 제대로 들기 힘든 세상이지만 주인공 정철은 영화 맨 마지막, 인간다움을 제대로 보여준다. 돈을 떼먹고 도망간 팀장의 집 현관문을 떼어 버렸다가 다시 돌려주는 모습이 바로 그것. 박정범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기적.
"정철이 계략을 짰지만 인과응보라고 자신이 오히려 당하고 또 계략을 짜지만 고용주에게 해고당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더이상 잃을 게 없는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깨달은겁니다. 문짝을 뗀다고 해서 내 행복이 이뤄지는게 아니구나 깨달은 거죠. 보통 사람들은 깨닫는 순간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기적같은 일이죠."
희망으로 끝났다고 하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둡다는 건 박정범 감독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산다' 뿐만 아니라 '무산일기' 때도 어둡다는 이야기는 피해갈 수 없었던 일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분노였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제는 '다 같이 이야기해보자'의 접근 방식으로 다가갈 거란다. "다음 작품은 조금 더 상냥하게 다가가보려고 해요"라며 멋쩍게 웃어보인 그였다.
"'무산일기'를 찍을 때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은 분노였어요. 이 세상에 대한 분노였는데 이제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보게 만들면서 분노보다는 '같이 이야기해보자, 같이 생각해보자'라는 접근방식으로 가려고 해요. 좀 더 사람들한테 여유롭게, 마음 편하게 다가가려고 하고 어두운 이야기지만 다정한 어법으로 상냥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해보려고요.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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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