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5월 박스오피스를 양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 한국 영화 두 편이 관객들의 이렇다 할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민규동 감독의 ‘간신’과 전도연 김남길 효과를 기대한 ‘무뢰한’이다. 두 영화는 4일까지 94만 명, 33만 명을 각각 동원했지만 손익분기점은커녕 완성도 면에서도 압도적인 찬사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고전중이다. 대체 왜?
‘간신’은 주연 배우 보다 감독에게 밑줄이 그어진 영화였다. 봉준호 만큼의 세공력은 아니지만 매 작품마다 기대를 뛰어넘은 흥행사 중 한 명이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관을 상업영화라는 팔레트에 영리하게 풀어놓고 배합할 줄 아는 연출가라는 점에서 수요가 높았다.
왕이 아닌 신하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발화점도 신선했고 시나리오 짜임새와 얼개,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노출도 저급하지 않으면서 강렬한 인상을 줘 꽤나 효과적이었다. 현대극 보다 미술과 조명 등 신경 써야 할 항목이 몇 배 많은 사극이었지만 민규동은 첫 사극 연출가답지 않게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화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듯 했다.
하지만 ‘간신’은 대중을 한 순간에 장악하지 못 했고 적잖은 빈틈을 노출하며 상업 영화의 1차 목표인 자본에 책임지지 못한 영화가 됐다. 역시 가장 큰 패착은 스토리와 플롯 과잉에 있었다는 생각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고 등장인물마다 제각각 그럴 수밖에 없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부여하다보니 오히려 스토리가 지루하고 남루해졌다는 느낌이다.
특히 연산군에게 채홍사로 임명된 임숭재(주지훈)의 캐릭터와 심리 변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훔치지 못 한 게 영화의 무게 중심을 흩뜨렸다. 달콤한 권력의 맛에 취해가던 숭재가 안타고니스트로서 확실하게 활약해야 했음에도 감독은 무슨 이유인지 그를 중반부터 권력의 희생양, 가엾은 남자로 그려나간다.
왕 몰래 왕 부럽지 않은 권력을 쥐고 흔들던 야심가가 어릴 때 연모했던 단희(임지연)를 기녀로 발탁한 뒤 갈등에 빠지고 왕이 눈독 들인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결심하는 것까진 심박수가 높아졌다. 하지만 단희를 위해 왕의 명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너무 쉽게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은 ‘갑자기 왜 저래’라는 의구심이 들 만큼 고개가 갸웃해졌다. 당연히 그 뒤부턴 그가 아무리 고뇌하고 칼을 휘둘러도 몰입되지 않는다.
물론 시간 관계상 숭재-단희의 지고지순한 사연이 편집됐을 수 있고, 영화적 관용으로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연출이 믿고 보는 민규동 정도라면 관객에게 넓은 아량과 이해심을 바라선 안 된다. 흥행이 관객과 벌이는 한바탕 기 싸움이라고 한다면 이번 ‘간신’의 민규동은 중반부터 관객을 상대로 한 기선 제압에서 상당 부분 밀렸다는 인상이다.
CGV가 투자한 ‘무뢰한’도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맛을 탑재했음에도 불구 관객의 지갑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 한 건 작품 내부의 결함 탓이다. 사랑할 수 없는 남녀가 서로의 슬픔, 상실을 발견하고 핥아주다가 처연하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통속극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살인범의 동거녀에게 접근한 형사가 시궁창에 빠져있는 여자를 보고 흔들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한다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상품성 있는 스토리다.
하지만 재곤(김남길)이 혜경(전도연)에게 빠지게 되는 게 동정인지 연민인지 아니면 자기 동일시인지 세밀하고 탄탄하게 그려지지 않다보니 둘의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쉽게 와 닿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텐프로에서 단란주점 마담, 마약범 도우미로 급속도로 추락하는 위태로운 여자를 지켜주고 싶었던 형사의 순정은 박수 받아야 하지만 밀당과 썸이 난무하는 시장에서의 평가는 ‘저런 남자가 어딨냐’에 가깝다. 역시 드라마의 개연성과 이를 극복해야 할 밀도 문제였던 걸까.
‘간신’ ‘무뢰한’의 감독은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각본가들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인물의 감정선과 변화 지점, 이탈 위험 경로 등을 잘 파악하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공교롭게 두 작품은 캐스팅 과정에서 여러 혼선을 겪기도 했다. ‘무뢰한’은 촬영을 코 앞에 두고 남자 주인공이 바뀌며 시나리오가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했다. 어렵게 섭외한 주연 배우를 배려하느라 분량을 늘려주고 극적인 상황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땜질식 수정과 ‘이 정도면 관객들이 이해해 주겠지’하는 방심은 과연 없었을까.
인터넷에는 호평이 절반 이상이지만 간혹 ‘간신, 정말 간신히 봤어요’ ‘무례한 아닌가요’라는 일부 실망한 네티즌의 일침도 눈에 띄었다. 이제 반나절이면 카톡과 SNS를 통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개봉 영화의 운명과 단축된 유통기한도 서글프지만, 한국 영화가 하관 쩍 벌어질 정도로 위세 등등해진 할리우드 외화에 계속 상석을 내주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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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무뢰한'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