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얻는 드라마들은 대체로 두 종류의 길을 걷는다. 첫째는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강화해 남녀노소를 불문, 광범위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는 쪽이다. 몇 해 전 뜨거운 열광을 끌어냈던 SBS ‘추적자’를 시작으로 KBS 1TV ‘정도전’, SBS ‘펀치’, 최근 종영한 SBS ‘풍문으로 들었소’ 등이 예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수사물, 역사극, 풍자극 등 다양했지만, 보는 이들에게 촌철살인과 같은 대사와 상황들로 ‘공감’과 ‘쾌감’을 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 하나는 연애물류다.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열광할만한 남성 캐릭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러브라인을 형성해 시청자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경우다. 드라마를 시청하는 주 시청자층이 20대부터 30, 40대의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좋은 승부수다. 어떻게 보면 손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이를 맛있게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거기에 집중해 제대로 그려낸다면 이만큼 안전한 길도 없다. KBS 2TV ‘프로듀사’, ‘후아유-학교2015’ 등이 대표적이다.
KBS 2TV 수목드라마 ‘복면검사’(극본 최진원 연출 전산 김용수)는 두 노선 사이, 다소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건조하지만 힘 있는 사회고발물이 되기에 이 드라마는 다소 가볍다. 복면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역시 정석이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시청자(주로 여성시청자)들의 관심을 확 끌어낼 만한 러브라인은 아직 더디게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복면검사'(극본 최진원 연출 전산 김용수)에서는 상택(전광렬 분)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주인공 대철(주상욱 분)과 민희(김선아 분)의 모습이 각각 그려졌다.
대철과 민희가 상택에게 복수를 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대철은 아버지 도성(박영규 분)의 죽음 배후에 상택을 비롯한 현웅(엄기준 분), 그의 가족 중호(이기영 분) 등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특히 그는 상택과 우연히 함께 한 술자리에서 상택이 과거 중호와 손잡고 자신의 아버지를 간첩으로 만들어 낸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치를 떨었다. 이후 그는 현웅에게 접근, 상택을 탐탁잖게 여기는 그의 의중을 읽고는 “끈을 잘라버리겠다”며 상택을 살인자로 만들어 버릴 계획을 알렸다.
이어 민희는 과거 성폭행으로 죽은, 장애가 있었던 자신의 어머니 사건을 조사하던 중 당시 이를 담당했던 경찰이 상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그는 상택이 이를 목격한 목격자를 오히려 협박해, 사건을 무마시키려 시도했다는 것에 격분했다. 현재 그는 도성을 죽인 진범을 상택으로 확신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었기에 분노는 더했다.
두 주인공에게 복수의 모티브가 충분하고, 악행의 주인공인 상택 역시 과연 ‘치가 떨리게’ 악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 ‘복면검사’가 여타 사회 고발성 드라마들만큼의 큰 공감을 사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은 주인공들 사이 얽혀있는 과거 인연이지, 현재를 사는 이들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드라마의 초반, 박도필 살인 사건과 이 사건의 배후인 상택이 목격자 가족을 돈과 권력으로 압박하는 장면 등의 묘사가 있었지만, 조금 더 피부에 와 닿는 사건이나 문제들을 묘사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살려야 할 것은 복면을 쓴 검사의 영웅적인 면모다. 대철은 인간적이면서도 저돌적인 면이 매력이긴 하지만, ‘히어로’로 볼만큼 복면 쓴 영웅으로서 그다지 큰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복면을 쓰고 정체에 대한 꼬리를 잡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 방송에서도 그는 복면을 쓴 채 상택을 공격했다가 분노를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를 뻔했고, 민희의 도움으로 겨우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는 드라마 속 영웅 캐릭터에 열광하는 여성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이 안 되는 모습임이 분명하다. 때로는 맛을 위해 MSG도 필요한 법. 영화 ‘배트맨’까지는 못해도 드라마 ‘힐러’ 정도를 예상했던 시청자들에게 복면 쓴 검사 대철의 인간적이기만 한 모습은 어쩐지 심심하다. 그러다 보니 러브라인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리게 되고, ‘로코’에 최적화된 두 배우 주상욱, 김선아의 매력이 발휘될 기회도 줄어들었다.
한편 '복면검사'는 주먹질은 본능, 능청은 옵션인 검사 하대철과 정의는 본능, 지성은 옵션인 감정수사관 유민희의 활약을 진지하고 유쾌하게 그린 드라마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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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검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