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수정이 지난 2001년, KBS 드라마 '학교4' 출연 이후 어느덧 데뷔 15년차를 맞았다. 물론 15년차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의 동안 외모를 가졌지만. 그런데 이처럼 적지 않은 연기 경력의 임수정은 이제서야 진짜 여배우가 되는 것 같다며 기뻐했다. 수많은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왔던 그가 이제서야 여배우가 되다니. 무슨 속내일까.
자신 앞에 항상 따라다니던 '동안' 수식어 때문이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이후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연령대 폭이 넓어졌단다. 그간 동안 이미지 때문에 항상 어린 연령대의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감성에 맞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진짜 여배우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조금 다양해진 것 같아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찍고 난 다음에 캐릭터 연령대가 내 나이, 내 감성에 맞게 들어오더라고요. 어려봤자 20대 후반이거나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졌거나 아이를 잃었거나 이런 캐릭터들이 들어오고 장르도 다양해졌더라고요. 하고 싶은 캐릭터가 정말 많아요(웃음). 물론 어린 캐릭터가 들어오면 가능하면 해야죠. 나이보다는 어려보이는 외모 때문에 지금까지 어린 캐릭터를 많이 했어요. 어린데 마음이 깊은,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해왔었죠. 감성에 맞는 캐릭터를 찾아가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에요. 진짜 여배우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영화 '은밀한 유혹'에 함께 하게 된 것도 임수정을 성장시켜준 계기 중 하나였다. '은밀한 유혹'은 동명의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인생을 건 위험한 게임을 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극 중 지연 역을 맡은 임수정은 기쁨, 설렘, 분노, 슬픔, 두려움 등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오만가지의 감정을 다 표현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그에겐 크나큰 도움이었다.
"아마 전체 촬영 분량 중 5회차만 빼고 다 나왔던 것 같아요. 분량도 많기도 했지만 감정상태가 그래프로 치면 위 아래를 계속 오가는 인물이라 잘 해보겠다고 선택했는데 왠걸, 쉽지는 않더라고요. 많이 힘들었죠. 지연이라는 인물은 성열하고는 동지이지만 묘한 경쟁심을 느끼는 인물이라 어느 한 곳에도 제대로 의지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예요. 그러다보니 캐릭터의 외로움을 고스란히 받았던 것 같아요. 많이 외로웠고 실제로도 힘들었죠. 촬영이 끝나고 한참 뒤에 작품이 나왔는데 오랜만에 작품을 보니까 나 되게 많이 성장했구나 생각했어요."
배우 외적으로도 '은밀한 유혹'은 그에게 성장을 준 작품이었다. 어느덧 선배라는 호칭을 듣는 위치에 온 그는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의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영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스태프들의 환경에 눈이 가기 시작했고 그들을 살피는 여유가 생겼다고 기뻐했다.
"배우 이외의 모습에서도 제가 성장했다고 느꼈어요. 현장에서 이제 저도 선배라는 호칭을 듣는 연차가 됐거든요. 그래서인가 스태프들이 의지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스태프들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겼고요. 감독님도 저에게 귀를 많이 기울어주셨어요. 작업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성장했구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죠. 신인 때는 내꺼 하기 바빴거든요. 그런데 점점 함께 만드는 주변이 보인다는거죠. 배우, 스태프, 감독님 등이 다 보인다는 게 그만큼 시야가 넓어졌구나 생각이 들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나 많이 자랐네, 이제 내 연기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는 이 작품이 소중한 작품이에요. 결과를 떠나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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