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제구가 안 되는 투수는 알아서 마운드를 내려와야 한다. 평소 컨트롤되던 뭔가가 작동되지 않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피해와 공포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외딴 섬 쥬라기 월드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재앙 역시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고 과신한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린다.
‘이래도 안 놀랠 거냐’며 묻는 것 같은 시각적 쾌감에 가중치를 둔 이런 어드벤처 오락물에 서사와 개연성, 인과관계 등을 따지는 건 어쩌면 무의미한 접근일 수 있다. 앙상할지라도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골격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이야기에 동참할 준비가 돼있기 때문이다. 2, 3편 시리즈의 처참한 실패를 맛본 백전노장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래서 14년 만의 귀환을 앞두고 보다 더 CG에 집중했고,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적중한 것처럼 보인다.
코스타리카 섬에 위치한 체류형 테마파크 쥬라기 월드는 하루 2만 명이 넘는 인파로 문전성시이지만 만족할 줄 모르는 투자자들은 신상 공룡 개발 압력을 넣으며 경영진을 다그친다. 공룡을 코끼리 보듯 하는 아이들에게 오금을 저리게 할 만한 크고 무서운 공룡을 선보여야 한다는 탐욕이다.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도미누스 렉스를 만들어내고 이 성미 급한 공룡은 신상 출시 일을 앞두고 우리를 탈출, 섬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된다. 사람을 속일 줄 아는 이 하이브리드 공룡은 동족은 물론이고 사람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며 자신이 최고의 포식자임을 깨닫게 된다. 이모의 초대로 공원을 찾은 형제는 길을 잃고, 이들을 지키기 위한 해군 출신 사육사 오웬(크리스 프랫)과 식인 공룡과의 사투가 벌어진다.
‘쥬라기 월드’는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관객이 마치 손목 밴드를 차고 이 테마파크 섬에 입장해 갖가지 공룡을 체험하는 것 같은 재미를 맛볼 수 있도록 연출됐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가상 체험인데 감독은 이를 위해 부감 샷을 자주 쓴다. 또 22년 전 문 닫은 쥬라기 공원의 사파리 차량과 안전모 같은 흔적을 보여주며 올드 팬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도 혼용했다.
다른 하나는 크고 무서운 공룡으로 돈을 벌려는 쥬라기 월드 ‘만수르’ 투자자처럼 제작자 스필버그도 관객을 10분에 한 번꼴로 놀라게 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시도를 감행한다는 점이다. 구멍 뚫린 천장으로 탈출한 익룡 무리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낚아채 사정없이 내동댕이치고, 크레인에 매달린 식인 상어를 마치 핑거 푸드처럼 한 입에 해치워버리는 20m 크기의 수중 공룡 모사사우루스의 물속 솟구침도 간담을 서늘케 한다. 더 무섭고 강력한 공룡을 원하는 투자자들의 잔소리가 마치 스필버그의 훈계처럼 겹쳐 들려 흥미롭다.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을 잊기 위한 킬링 타임용 데이트 무비로는 흠잡을 데 없는 오락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각적 쾌감은 ‘아바타’에 못 미치고, 컴퓨터 그래픽도 ‘혹성탈출’ 시리즈보다 돈을 아낀 흔적이 역력하다.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초식 공룡과 레이싱을 벌이는 모습 등 스필버그가 1993년 연출한 1편을 셀프 오마주한 장면도 여럿 나오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14)로 진가를 입증한 크리스 프랫과 테마파크 총괄 책임자 클레어 역의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의 조합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으로 나쁘지 않았다. 1편에서 존 해몬드 박사 연구팀 일원이었던 B.D 웡이 22년 만에 같은 역할인 유전학 박사 헨리로 출연했다. 대부분 하와이 오하우 섬에서 촬영했고,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 외곽의 버려진 테마파크에 세트를 지어 재활용했다. 12세 이상 관람가로 124분.
bskim0129@gmail.com
'쥬라기월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