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번데기를 먹는 게, 우리한테 그리 즐거운 일일까. 할리우드 스타에게 결코 즐거울 리 없는 이 경험은, 최소한 시청자라도 즐겁게 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쉽진 않았다.
우리가 평소에 먹는 음식을 기겁하며 '억지로' 먹고는 "나쁘지 않다"고 안도하는 할리우드 스타를 보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우리도 같이 안도해야 하는 걸까. "그래, 우리 음식은 좋은 거야"라고, 자위라도 해야 하는 걸까.
지난 12일 방송된 MBC '우리 결혼했어요'는 미국의 국민여동생이라는 클로이 모레츠 '씩이나' 초대해서는 번데기와 순대, 매운 라면과 산낙지를 먹였다. 모레츠는 당연히 번데기의 모양에 깜짝 놀라고, 순대의 냄새에 생수를 벌컥 들이켰으며, 산낙지를 괴물 씹듯 씹었다. 예상보다 (싫은 티 내지 않고) 잘 먹은 모레츠에게 제작진은 온갖 미사여구의 자막을 동원해 감사를 표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생소한 음식을 먹이고 낄낄 대는 건, 무슨 의미일까. 역으로 우리가 외국에 나가서 '이상한' 음식을 웃으며 먹어야 하는 상황이 꽤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굳이 할리우드 스타에게 이를 강요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설마 한국 음식은 예외일 거라 믿는 애국심인가. 우리 음식이 아주 특출나서, 기겁했던 외국인들이 한번 맛만 보고 나면 '어메이징'을 외치며 홀딱 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거라고 예상한 걸까. 그렇게 단 한명의 외국인(할리우드 스타라면 더더욱)에게 한국 음식을 전파하는 게 국위선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예능이니까, 웃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마저도 애매하다. 이 음식들이 충분히 '혐오'스러울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굳이 외국인과 외국 출신 연예인들이 기겁하며 억지로 먹는 모습까지 보는 건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리 즐거운 경험도 아니었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건 너무 이해하지만,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해외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리얼한 반응을 쏟아내는 건 유튜브 등에서 매우 인기있는 콘텐츠이긴 하다. 우리의 매운 라면을 먹고 호들갑을 떠는 외국인들의 동영상은 은근히 중독성도 있다. 그런데 그 영상은 그들이 신나서 100% 자발적으로 찍은 것이다. '섭외'를 해서 진행한 것도 아니며, '그 음식 안삼키면 상처받을거야'하는 눈으로 보는 한국인도 없다.
'우리 결혼했어요' 제작진은 모레츠도 한국의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산낙지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 입장을 믿자면 최소한 민폐는 아니었을지는 모른다.
그렇다고 또 보고 싶은 광경도 아니었다.
ri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