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할리우드의 공습이 거셌던 2015년 상반기 극장가였다. 덩치 큰 블록버스터는 물론, B급이라는 신선함으로 중무장한 할리우드 영화까지 외화가 독식한 가운데 묻히기엔 아까운 보석같은 한국 영화 4편을 선정했다.
한 편은 많이들 익숙할 법한 영화 '쎄시봉', 그리고 나머지 세 편은 다양성 영화로 묶여버린 '기화'와 '소셜포비아' 그리고 '산다'. 덩치 큰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제 가치를 드러내지 못했던 네 편의 영화를 다시 꺼내들고 그 맛을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1. 노래 좋고, 연기 좋고..김현석 감독 '쎄시봉'
'쎄시봉'은 화려한 라인업과 쎄시봉의 실제 노래들이 고스란히 영화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 하지만 영화가 가진 즐거움에 비해 흥행은 만족스럽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 시절, 젊음의 거리 무교동을 주름잡았던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룬 '쎄시봉'은 고개를 절로 까닥이게 만드는 노래들로 약 122분 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을 추억에 젖어들게 한다.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웨딩케익', '사랑이야', '하얀손수건' 등 당시 유행했던 노래들을 듣는 것 만으로도 '쎄시봉'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 게다가 이런 노래들이 달콤한 고백송으로 활용되는 장면들은 노래의 즐거움과 함께 로맨틱함을 배가시킨다.
배우들의 열연 역시 '쎄시봉'의 포인트 중 하나. 노래를 직접 해야 하는 캐릭터들이기에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과시하는 강하늘, 조복래, 김인권, 진구, 정우 등의 모습을 보는 것도 물론이거니와풋풋한 사랑 앞에서 행복해하고 이별 앞에서 절망하는 정우-한효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도 '쎄시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 아버지란 이름으로..문정윤 감독 '기화'
'기화'라는 영화의 제목이 생소할 수 있겠다. 다양성 영화로 상업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상영관 속에서 관객들을 만나야 했기 때문. 하지만 상영관 수가 영화의 재미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에, 아버지 그리고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기화'로 2015년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 있을 듯 싶다.
'기화'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아버지 역할을 해 본적 없는 철없는 아버지 희용과 교도소에서 출소한 그의 아들 기화 그리고 두 남자의 절친한 친구 승철, 세 남자의 로드 무비. 흔히 로드 무비가 주인공들의 성장과 맞닿아있는것처럼 '기화' 역시 여정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남자들의 모습으로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철 없지만 조금씩 아들에게 제 모든 것(알몸)을 보여주며 다가가려 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하여금 변해가는 아들 기화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3. 악플 그리고 마녀사냥..홍석재 감독 '소셜포비아'
'소셜포비아' 역시 다양성 영화로 묶여 관객들을 만난 영화. 다양성 영화로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워낙 외화 돌풍이 거셌던 상반기 극장가였기에 혹시라도 이 영화를 놓쳤을 관객들을 위해 '소셜포비아'를 선정했다.
악플과 마녀사냥에 대한 적나라한 시선을 보여주는 '소셜포비아'는 악플러 현피 원정대에 참여한 지웅과 용민은 현피 당일 날, 시체로 누워있는 악플러를 발견하게 되고 경찰 시험에 불리하게 작용할까 악플러 죽음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게 된다.
무엇보다 '소셜포비아'가 인상적인 것은 소름돋을 정도로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악플러에 대한 것도 물론이거니와 그 악플러를 공격하는 또 다른 악플러들, 악플러를 향한 지나친 마녀 사냥 등이 절로 소름을 돋게 할만큼 현실적이다.
게다가 '마녀사냥'이라는 소재를 인터넷과 결합시키며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궁지로 몰아넣을수 있는가에 대한 시선까지 엿볼 수 있어 인터넷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볼 만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박정범 감독 '산다'
마지막은 최근 작품인 박정범 감독의 '산다'. 해외 영화제에 잇달아 초청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국내에선 적은 상영관수 등으로 그리 큰 흥행을 맛보진 못했다.
'산다'는 현실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미쳐버린 누나와 돌봐야 하는 조카 등 현실의 짐이 많은 노동자가 끊임없는 악순환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지극히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산다'를 상반기 다시 봐야 할 작품 4선에 꼽은 건 영화가 마지막에 주는 여운 때문. 감독은 극 중 주인공 정철을 한없는 극한으로 몰아넣는다. 임금을 떼먹고 도망간 팀장 대신 자신에게 돈을 달라 요구하는 동료들, 잘 해결해보려고 했다가 되려 궁지에 몰리는 상황까지 정철의 삶은 한없이 고달프지만 마지막 박정범 감독은 '그래도 인간은 따뜻하다'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각박한 요즘 세상 속에서 주인공 정철이 보여주는 마지막 행동은 왜 영화 '산다'가 이토록 극한으로 달려와야 했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
게다가 3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박정범 감독의 연출력 역시 '산다'를 묵혀두기엔 아까운 영화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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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 '기화', '소셜포비아', '산다'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