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배우가 없다.”
충무로에서 늘 반복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김고은, 한예리, 천우희 등 반짝이는 신예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연출 이해영, 제작 청년필름, 이하 경성학교)에도 그런 가능성을 지닌 여배우가 나온다. 연덕 역의 박소담이다. 연덕은 전학 온 주란(박보영)과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는 동급생으로, 주란과 함께 학교의 숨겨진 비밀에 점점 다가간다.
작고 앳된 얼굴에 쌍꺼풀 없는 눈, 가녀린 몸매. 박소담의 첫 인상이다. 여성스러운 외양과 반전을 이루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특히 신인답지 않은 섬세한 연기력이 보는 이들을 빠져들게 한다. 그를 ‘박보영 친구’ 정도로 기억해서는 곤란하다. ‘경성학교’를 시작으로, ‘베테랑’ ‘사도’ ‘검은 사제들’ 등 올해 개봉작만 4편이다.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얼굴이지만,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떠오르는 신인으로 불리며 주목 받고 있다.
지난 18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소담은 그런 관심에 대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뮤지컬 ‘그리스’를 보고 배우를 꿈꿨고, 2년 후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동기들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할 때, 연극과 단편영화로 4년을 보냈다. 졸업 후 바로 ‘프로의 세계’에 입문했다. 지난해 5월에는 17개 작품의 오디션을 봤다. 말 그대로 고군분투였다. 상업영화 첫 주연작 ‘경성학교’는 쉼 없이 달려온 지난날들의 보상이었다.
“‘경성학교’ 시나리오를 받고 연덕이란 인물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믿고 맡겨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이해영 감독님께 질문을 참 많이 했어요. ‘잘해야지’라는 마음은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렇게 석달 동안 한 인물을 연기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기분 좋은 부담감이었던 것 같아요.”
20대 또래 여배우가 다수 등장하는 ‘경성학교’ 촬영장은 실제 여고 분위기였다. 장르는 미스터리이지만, 촬영장은 유쾌했다. 비슷한 나이,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모여 서로에게 의지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박보영과 엄지원은 박소담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남자인 이해영 감독님과 심희섭 배우(켄지 역)는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소녀들은 참 행복했다”고 그는 웃었다.
‘베테랑’ ‘사도’ ‘검은 사제들’ 촬영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황정민, 송강호, 김윤석 등 쟁쟁한 선배들이 함께 했다. “보통 대선배가 아닌, 완전 대선배”들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 떨리고 걱정됐다. 하지만 김윤석과 송강호는 “아빠처럼 따뜻하게” 대해줬고, 강동원과 유아인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베테랑’ ‘사도’ 두 작품을 함께 한 유아인은 “20대 배우가 계속 작품을 하고, 살아남기 쉽지 않다”며 “20대 배우의 힘을 보여주자”고 그를 격려했다. 참으로 부러운 근무환경(?)이었다.
물론 그가 하루아침에 여러 작품을 꿰찬 것은 아니었다. 성실한 하루하루가 있었다. 동기들이 훌쩍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부러웠지만, 연기하는 쪽이 더 즐거웠다는 그다. 올해 개봉작이 무려 4편이나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지난해 강행군에 있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작품은 하나도 빼지 않고” 오디션을 봤다. 서른 개가 넘었다. 전부 상당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공개 오디션이었다. 그중에는 간절히 원했지만 그와 인연이 없는 작품들도 있었다.
도전을 멈추지 않은 덕분에 박소담은 감독들의 새로운 뮤즈로 떠올랐다. 아이돌 멤버와도 경쟁해야 하는 요즘, 그가 일궈낸 성과들은 칭찬할 만 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감독님들이 비슷한 말씀을 해주셨다”며 “다양한 것을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라고 하시더라. 동양적인 눈매와 얼굴, 목소리가 장점이라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고 답했다.
이제 배우로 첫 걸음을 디딘 사회 초년생이지만, 집에서는 1남2녀 중 장녀였다.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 받은 출연료로 부모님께 선물부터 한 야무진 딸이었다. 고교 시절에는 배우의 꿈을 반대한 부모님이었지만, 이제는 “즐겁게만 하라”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그는 “‘경성학교’ VIP 시사 때 굉장히 떨렸는데, 객석에서 자꾸 엄지를 치켜드는 아버지 덕분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고 말했다.
“올해는 박소담이란 배우를 알리는 해예요. 관객 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이런 친구가 있구나’ ‘이 친구 괜찮다’라고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알아주시는 것만으로 뜻 깊은 한해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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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