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미스터리 음악쇼 '일밤-복면가왕'(연출 민철기, 노시용, 이하 복면가왕)은 아이돌 수혜의 장이 되고 있다.
21일 '복면가왕'의 주인공은 걸그룹 에이핑크 정은지였다. 에이핑크의 수식어를 떼자 정은지의 목소리가 달라보였다. 이날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에서 큰 궁금증을 자아내던 어머니는 자외선이 싫다고 하셨어(이하 어머니)의 정체는 정은지로 밝혀졌다.
정은지는 이날 절절한 감정선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정인의 '미워요'에서 극찬을 얻은 데 이어 김태우의 '사랑비'를 불러 기립박수를 얻었다.
시간이 갈수록 누구인지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던 어머니를 두고 연예인 판정단도 쉽사리 추측하지 못했다. 윤일상은 처음부터 에이핑크의 정은지를 예상했다. "컴퓨터 보컬. 감정까지 놓치지 않는 가수"라며 지난 주에 이어 극찬 또 극찬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박자를 놓쳤는데, 금세 페이스를 찾으며 실수를 만회했다. 윤일상은 이를보며 "실수를 극복하는 데 더 큰 감동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정은지라는 데 다른 이들이 쉽게 동의하지 못했던 이유는 역시 정은지가 아직 어린 아이돌이란 데 있었다. 이윤석은 "박미경, 신효범 급"이라고 예측했고, 김창렬은 "내 보컬 선생님이기도 했던 박선주 씨"라고 전했다. 비스트 손동운 역시 "은지를 잘 안다. 분명히 잘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노래를 듣는데 가슴이 메어왔다"라며 1세대 아이돌이라고 추측, 그 중에서도 옥주현을 꼽았다.
김구라 역시 어머니가 정은지라는 의견에 갸우뚱했다. 어머니의 섬세하면서도 연륜이 묻어나는 감정 표현 때문이었다. 그는 "은지가 나이가 20대 초반을 조금 넘었다. 93년생이 저 정도 감성을 낼까"라며 선뜻 누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가요계의 큰 엄마가 될 것"이란 칭찬도 보냈다.
차례로 쟁쟁한 노래 실력자들을 물리친 어머니는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에게 결국 패해 복면가왕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베일을 벗을 수 있어 더 기뻐했던 시청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정은지. 이 프로그램을 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은지가 이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였나'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터였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 소속사에 직접 요청했다는 정은지에게서는 그 만큼 진지함이 묻어나왔다. 그는 "에이핑크로서의 목소리는 내가 어떤지 알겠는데 과연 나 혼자 노래할 때는 특색이 있는걸까란 생각이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에이핑크로서 낼 수 있는 목소리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터다. "그게 증명된 거다"란 말에 "좋네요"라며 웃어보이는 정은지에게서는 자신의 고민에 답해준 이 프로그램을 향한 고마움도 묻어나왔다.
앞서 에프엑스 루나가 '황금락카 두통썼네'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바다. 6주만에 얼굴을 공개하게 됐던 복면가왕 루나 역시 네티즌의 궁금증이 극에 달했었고, 가면을 벗자 '정말 루나였나'라는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루나 목소리의 재발견이었다.
이 외에도 걸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가희가 그토록 청아한 음색을 가진 것을 알게 됐고, EXID 솔지, B1A4 산들 역시 다시금 탈 아이돌급 보컬로 인정받았던 바다.
'편견'을 벗으니 목소리가 들린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이 프로그램은 자체가 사실은 편견에 재미의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댄스형 아이돌(혹은 젊은 댄스가수)이 가장 큰 재미의 근간이자 수혜자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돌은 인기 만큼 편견이 많은 가수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창조됐다기 보다는 '만들어졌다'는 이미지가 강한 댄스형 아이돌은 실제로 오랜 연습생 시절을 거쳐 실력을 쌓은 경우라 하더라도 일단 편견에 휩싸이기 쉽다. 연기를 하는 아이돌에게 이 아이돌이라는 것이 '꼬리표'라고 불리듯이, 가수들에게도 '아이돌'이란 수식어가 붙여질 때면 보컬보다는 퍼포먼스에 집중하게 된다.
이 방송이 아이돌을 위해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이돌을 위한 방송인 것은 분명한 듯 보인다. 의외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은 아이돌의 '내 목소리를 들어줘'라는 외침이 간절해보이기도 하다.
nyc@osen.co.kr
'복면가왕'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