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자력으로 ‘배달의 기수’ 꼬리표 뗄 수 있을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6.22 07: 0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연평해전’과 3년 전 여름 개봉한 ‘알투비:리턴 투 베이스’는 얼핏 사촌지간으로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전혀 다른 DNA를 가진 밀리터리 소재 영화다. 둘 다 남북 군사적 긴장감을 재료로 했지만 ‘연평해전’은 팩트에 입각한 기록 영화에 가까운 반면, ‘알투비’는 파일럿과 정비공 여하사의 러브 라인과 낭만을 토핑해 보다 상업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어느 정도 사전 지표를 통해 흥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데이터 시대임에도 애국심 이데올로기를 탑재한 ‘연평해전’ 같은 영화는 오락물과 달리 쉽사리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듦새나 연기력, 감동 지수나 웃음 빈도 보다는 오늘의 엄숙한 현실을 비춰주는 시대의 거울로 더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8000원의 교환가치 카테고리가 아닌 영화 외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만큼, 한번 터지면 무섭게 터지는 게 이런 영화의 속성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상존하지만.
9년간 우여곡절을 겪고 세상에 나온 ‘연평해전’의 개봉 전 분위기는 예사롭지 않다. 알바를 의심하기엔 인지도와 호감도가 굉장히 높고, 반드시 보겠다는 얼리어답터 충성 고객들의 지지도 과열 단계다. 이런 열기가 실제 구매로 이어진다면 최소 500만 명은 거뜬히 넘길 것이라는 극장 전문가도 있다. 보통 종영 직전 사용하는 끝물 마케팅 수단인 각계각층 단체관람 문의도 일찌감치 쇄도하고 있을 정도다. 좌우를 떠나 그날의 슬픔에 동참하겠다는 대동단결 수요가 감지되는 것만큼은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연평해전’이 ‘디워’나 ‘명량’처럼 영화적 완성도와 별개로 애국심 어드밴티지가 얼마나 작용할 것인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더 나아가 ‘연평해전’의 배급사 NEW 입장에선 ‘디워’나 ‘명량’을 결과적으로 도와준 진중권과 허지웅의 한 마디를 간절히 바랄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의 날카로운 독설이 상대 진영의 결집 효과를 낳으며 판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학습효과를 떠올린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러모로 ‘연평해전’의 앞날이 생각만큼 순탄하진 않을 것 같다. 19일을 기점으로 메르스 여파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던 ‘쥬라기 월드’의 가족 관객이 다시 극장으로 쏟아져 나왔고, ‘극비수사’ 역시 예상대로 첫 주말을 잘 넘기며 최소 300만 영화로 입증된 게 ‘연평해전’ 입장에선 악재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초 10일에서 개봉을 2주 미룬 것이 그나마 NEW의 감각적 판단이었다는 생각이다. 만약 예정대로 링에 올랐다면 공룡에 무참히 짓밟혔을 것이고 ‘극비수사’에까지 밀리며 첫 주 매우 난처한 성적표를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랏돈 성격인 IBK 기업은행의 자금과 국방부의 지원으로 제작된 태생적 한계이겠으나 ‘연평해전’의 빈곤한 극적 상상력 또한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교전과 나라를 위해 숭고하게 전사한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방점을 찍은 감독은 상업 영화의 뼈대인 극적 장치를 지나치게 방치하는 우를 범했다. 지금껏 드러난 사실 관계를 왜곡하라는 게 아니라 NLL의 배경과 이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 교전 수칙 등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 했던 쟁점을 과감히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어야 함에도 인터넷 자료와 기록에만 의존하다 보니 극적 짜임새와 밀도가 초반부터 헐거워지는 결과를 자초했다.
 생사를 가른 ‘그날 그 사건’을 강조하기 위해 시간 순서로 점층 나열한 것까진 좋았지만, 관객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기승전결에는 적잖은 공백과 이음새 부재를 노출했다는 인상이다. 해군이었던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고 싶었던 원칙주의 장교와 청각장애 엄마를 둔 의무병, 건강 이상 때문에 주특기를 바꿀 처지에 놓인 조타장 하사의 사연으로 관객을 충분히 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감독은 국민들의 관심이 온통 월드컵에 쏠릴 때 벌어진 비극이란 점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데 이 방식 역시 세련되지 못 했다는 생각이다.
 ‘연평해전’을 관통하는 반공 메시지에 충분히 공감하고, 애국심에만 기댄 호국 영화라는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알투비’조차 북한 내부의 매파와 비둘기파의 충성 경쟁을 묘사하며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포장, 개연성에 시간과 공을 들였는데 ‘연평해전’엔 모든 이야기 축과 설정이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며 도식적이다.
 정부와 일부 보수 언론의 지원을 받을 바에야 이렇게 투박하게 밀어붙이기보단 좀 더 시나리오 개발에 시간을 쏟고 극적 장치 보강에 정성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다면 항간에 떠도는 2015년 판 ‘배달의 기수’라는 꼬리표가 쉽게 붙지 않았을지 모른다. 과연 ‘연평해전’이 자력으로 선입견과 여러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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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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