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에게서 이제껏 보지 못한 얼굴을 발견할 때, 그 발견이 주는 짜릿함이 있다. 그 짜릿함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그 연기를 기어코 해낸 배우에게도 해당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그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본 감독이야말로 짜릿함은 배가 되지 않을까.
영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이하 '경성학교')' 이해영 감독이 그랬다. 앳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였던 배우 박보영게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했을때, 이해영 감독은 이 영화가 완성됐다는 생각을 했단다.
박보영을 '보영느님'이라 부르며 남다른 애정을 표한 이해영 감독은 자그마한 소녀의 가슴 속 불덩이를 보고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란다. 특히나 영화 말미 박보영의 다양한 감정 연기를 보고선 짜릿함을 느꼈다고 했다. 늘어놓는 박보영의 칭찬에 "엄지원씨가 섭섭해 하시겠다"며 농담을 건네니 진땀을 뻘뻘 흘리며 "지원이는 말할 것도 없죠. 다음에 지원이랑 작품하면 관객 분들 다 죽었어요"라고 껄껄껄 웃어보인 그다.
"박보영의 연기 변신은 저도 상상 못했어요. 중반 이후 모습이 하나도 안 그려져서 더욱 박보영과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박보영을 딱 보면, 동생같고 사랑스럽고 이런데 감정 연기할 때보면 가슴에 불덩이가 나오는게 보여요. 그림이 그려지진 않지만 박보영이 하면 진짜 새롭겠다는 생각에 함께 하게 됐죠. 그리고 그 나이 또래에 예쁘고 연기 잘하고 믿고 보는 배우로는 독보적이지 않나요. 하하. 영화를 촬영하면서는 저도 놀랐어요. 박보영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 싶었죠. 놀라기도 하고 감동이었어요. 특히나 마지막에서 박보영이 슬펐다가 분노하는 장면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보는 순간, 이것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마치 이 영화의 표지 같은 얼굴이었죠. 그 얼굴까지 찍고 나서 이 영화가 비로소 완성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박보영의 변신도 변신이거니와, '경성학교' 영화 자체도 어찌보면 '변신'이라는 말과 잘 어울릴 듯 싶다. 기존의 한국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변주로 영화는 흘러가고 있으니 감히 '한국 영화의 변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해영 감독은 관객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단다. 단, 즐거운 당황이어야했다. 결말에 대한 의견의 분분함도 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감독의 생각이었다.
"관객분들이 놀라는 반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에 주란만 남고 아무것도 없어지는, 일종의 무중력 상태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걸 보면서 관객분들이 '어!' 이렇게 놀라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당황이라면 당황일수도 있는데 즐거운 당황이 아닐까 싶어요. 관객들이 아주 익숙한 방식으로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에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죠. 약간의 충격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게 노림이라면 노림수였습니다."
이런 변신은 '반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자'는 이해영 감독의 생각 덕분에 가능했다. 물론 그것이 오히려 또 다른 강박을 만들긴 했지만 확실한건, 이해영 감독은 기존의 한국 영화 공식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미스테리 영화에는 반전에 대한 강박이 있어요. 저는 거기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죠. 때문에 반전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지만요(웃음). 우리나라 영화에선 반전 하나 보여주려고 2시간을 끌고 오잖아요. 영화의 반전이라는 게 '식스센스'처럼 역사에 기록될 만한 반전이 아니라면 반전을 굳이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또 반전 강박 뿐만 아니라 신파에 대한 강박도 있죠. 반전과 함께 울리려고 하는데 거기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보여준 방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놀라게 하고 싶었죠. 익숙한 방식이 아닌, 정말 생각지 않은 방식으로 자극을 줘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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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