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재원의 트레이드마크인 '살인미소'는 없었다.
새하얀 피부에 서글서글한 눈, 시원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김재원의 매력인데 그 모습을 싹 지웠다. 한이 서린 매서운 눈매와 굳다문 입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김재원은 MBC 월화드라마 '화정'(극본 김이영, 연출 김상호 최정규)에서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의 장남으로, 훗날 반정을 일으켜 16대 왕으로 오르는 능양군 인조를 연기한다. 권좌에 대한 야심이 남다른 권력지향형 인간이다. 끊임 없이 작은 아버지 광해군(차승원 분)을 끌어내리려 하고, 고모 정명공주(이연희 분)도 경계한다. 끈 떨어진 연이지만 실을 연결해 다시 날고 싶어하는 것.
지난 23일 방송된 '화정' 22회에서 능양군의 야심이 제대로 드러났다. 명국에 파병을 주장하며 석고대죄를 해 광해를 비롯한 조정에 혼란을 더했다. 역모죄로 죽은 능청군의 형인 능양군. 낙행했던 그는 조선이 명나라에 파병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광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명을 왜란 때 조선을 도운 은인으로 추앙하며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광해에게 폭정을 멈출 것을 요구했다. 광해를 '밀물', 자신을 '썰물'에 비유하며 위협을 가했다. 형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광해로부터 거절당했었기에 누구보다 악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대신들은 그를 가리켜 나서기 좋아하고 시선을 받고 싶은 '꼴통'이라고 치부했다. 김재원의 눈빛을 통해 능양군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병판 이이첨(정웅인 분)도 그의 행보를 참을 수 없었다. 강주선(조성하 분)을 중심으로 한 서인들은 파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명국과 전쟁을 하는 후금이 조선과의 전쟁을 원치 않는 입장이었기 때문. 후금은 조선으로부터 조총부대를 지원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주선의 속내는 달랐다.
명을 도와 지속적으로 부를 유지하려 했기에 조선군을 파병 보내려 하는 것이다. 서인들을 꾀어내 '파병 반대'를 외치는 듯 했으나, 속으로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이이첨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명국 파병을 원하며 광해를 무너뜨릴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날 능양군을 연기하는 김재원의 대사는 입에 착착 붙었다. 악에 받친 능양이 다시 살아돌아온 듯 했다.
김재원은 13년 전 방송된 드라마 '로망스'를 통해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소년을 연기하며 흐드러진 벚꽃처럼 순수한 고등학생의 사랑을 표현했다. 귀엽고 상큼한 얼굴로 '살인미소'라는 명함도 남겼다. 그랬던 얼굴에 세월의 무게감이 더해지고 표정 연기가 다양해졌다. 이마에 파인 주름마저도 연기를 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연륜을 통해 쌓은 연기에 깊이가 있었다. 굴곡진 삶을 산 능양군의 아픔과 슬픔을 안정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상큼한 눈웃음은 유효한데 그것으로만 커버할 수 없는 역할의 무게감을 눈물로 표현하며 능양군을 '김재원화'했다. 차승원에 맞서 카리스마를 발산할 그의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
한편 '화정'은 고귀한 신분인 공주로 태어났으나 권력 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아간 정명공주의 삶을 다룬 드라마다. 매주 월, 화 오후 10시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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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