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환 “신동엽·김구라보다 외모는 내가 낫죠”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5.06.24 09: 43

원조 ‘꽃미남’ 방송인이자 개그맨 출신 MC 정재환이 돌아왔다. 80~90년대 잘생긴 개그맨으로, 현재 유재석·신동엽·김구라 등에 비견할만한 ‘잘 나가는’ 진행자로 살았던 그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방송 활동을 줄였다. 한글연구에 매진,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한글지킴이’로 살아온 것도 수년째.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영어책’을 냈다. 그 사이 필리핀으로 영어 유학을 다녀왔단다. 엄밀히 말하면 ‘영어책’이라기보다는 영어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담겨있는 ‘어학연수기’(‘정재환의 필리핀 영어연수’, 말글빛냄)다. 매번 의외의 행보로 놀라움을 주는 그다웠다.
“2013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 캠퍼스에서 자연사 강의를 했어요. 한글 문화연대에서 공동대표를 하고, 한국어 교실을 만들어서 우리나라에 시집 온 여성들을 모셔다 한국어를 가르쳐드리고 있는데 제가 영어를 잘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또 우리나라 대학에 외국학생이 많이 나와 있으니까, 그런 학생들에게 한국사나 한국 문화를 가르칠 때 영어를 할 줄 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죠. 그랬는데 불현듯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년 5개월 정도 필리핀에 다녀왔어요.”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다. 다만, 홀로 외국에서, 어학원 기숙사에서 지내는 생활이 고될까 걱정을 해줬다. 특히 아내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재환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럼에도 본업과 스스로 결정한 사명 사이에서 고민은 많았다. 지금까지 ‘공부하는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는 MC 정재환에게 득이 되지 못했다. 방송에도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생각해 시작한 공부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필리핀으로 떠날 때는 그나마 진행하고 있던 방송들을 다 내려놓고 가는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제일 친한 친구가 방송 작가예요. 제가 한창 한글 운동을 한다고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할 때 그 친구가 제일 먼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너는 이제 연예인이 아니야’라고요. 오락 쪽에서는 너에 대해 더 이상 신경을 안 쓴다고요. 물론 순전히 공부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방송에서는 늘 신세대를 원하게 마련이니까요. 제 경우는 보편적인 경우와 다르게 제가 먼저 일탈을 한 거지만, 어떻게 보면 두 가지가 같이 작용을 했죠.”
필리핀에서는 영어공부에 매진했다. 나가서 영어를 공부해보고 내린 결론은 영어는 필요한 사람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학연수는 필요한 기초를 한국에서 모두 쌓고 가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았다. 써먹을 기회도 주지 않으면서 높은 영어 성적을 강조하는 기업의 채용구조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이 모든 걸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게 도와준 시간들이었다.
 
“지금 세대는 입시와 함께 영어라는 쌀가마니 하나를 더 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대개는 보통사람이에요. 노태우 대통령이 말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웃음) 진짜 보통사람이요. 더러 천재들이 있죠. 하지만 천재는 만나기 어려워요. 그들은 대단히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요. 보통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 적성이 뭔지 잘 찾아야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잘 찾아서 그걸 열심히 하면 돼요. 분야가 뭐든 간에 자기를 발휘할 방법이 있다면 그걸 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너무 많은 걸 시키는 것 같아요. 우리는 슈퍼맨이 아닌데 말이죠.”
1년에서 5개월을 더 연장해 약 1년 반의 시간을 영어공부에 사용했다. 자신의 결정들에 후회를 한 적은 없을까? 비단 필리핀 어학연수 뿐 아니라 공부에 많은 에너지를 쏟기로 선택했던 순간들에 대해 그가 스스로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궁금했다. 
“사실은, 후회한 적도 있어요. 공부가 아주 힘들었을 때 내가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싶었죠. 공부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난 공부에는 재능이 없는데. 코미디를 그만두고, 방송 MC로 전향한 것도 더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나온 답이었죠. 전 보통사람인데, 보통사람이 공부하는 건 참 힘들어요. 또 한 가지는 방송을 많이 할 때보다 돈은 많이 벌지 못해 집사람에게 미안하다는 점이죠. 얼마 전에 최백호 선배님을 만났는데, ‘재환이 방송 열심히 하고, 골프도 치고, 그냥 재밌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든 길을 택했을까.’라고 얘기하셨어요. 그런데 꼭 백호 형님이 그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힘든 길이라는 건 겪었어요. 일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일과 공부를 같이 하니까 그런 게 힘들긴 했죠.”
그래도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건 역시나 방송이다. 최근에는 YTN에서 ‘재밌는 낱말풀이’라는 짧은 코너를 맡게 돼 방송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지금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방송 복귀에요. 공부를 많이 했으니 이제는 프로그램을 맡아 실력 발휘를 하고 싶네요. 시청자분들께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고 싶고요. 다음 학기에는 경기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게 될 것 같아요.”
짧은 시간동안 방송환경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상파 방송 뿐 아니라 종편방송과 케이블 채널에서 만드는 예능프로그램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정재환은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말 관련한 퀴즈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구상을 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예능 쪽에서도 불러준다면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또 자신의 뒤를 이어 종횡무진 활약하는 후배들을 보면 그 재능에 감탄할 때가 많다고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 종종 ‘너는 터를 닦아놓고 어디를 갔느냐?’고 말을 많이 합니다. 요즘 후배들은 상당히 재능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는 스스로 일탈해 학교를 갔지만, 그 친구들한테 밀려나지 않은 게 한편으로 다행인 것 같아요. 충돌이 있었겠죠. 신세대는 구세대를 밀어내기도 하는 거니까. 신동엽, 김국진, 김구라, 김제동, 이런 친구들이 다들 색깔이 있고 재능이 있고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뛰어난 점들도 많고요. 외모만큼은 아마 제가 나을 거예요. (웃음)”
‘젠틀’한 이미지의 자신과는 정반대 캐릭터인 후배 김구라에 대한 생각은 흥미로웠다.
“어떨 때 저도 김구라 씨의 방송을 보면서 ‘저런 질문할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김구라 씨가 지금 스타가 됐죠. 스타가 됐다는 건, 우리 사회가 그런 캐릭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예요. TV를 틀었는데 10군데에서 모두 정재환 같은 애들이 나오면 얼마나 지겹겠어요? 이쪽은 김구라, 이쪽은 신동엽 같은 사람이 나오고, 그래서 재밌는 거죠.(중략) 저에게도 한창 때가 있었어요. 1990년대 무렵엔 방송에서 저 같은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하셨죠. 제가 자주 드는 예인데요, IMF 이후에는 가수 장나라씨처럼 귀엽고 밝은 사람이 인기가 있었어요. 그런 시대적 요구가 있었던 거죠. 전 그래서 연예인은 항상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원하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정재환은 지금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 방송복귀도, 한글연구와 운동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온 힘을 다해 해나갈 것이다. 얼굴에 자리를 잡은 주름에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온 사람의 지혜가 베여있고, 과거보다 한층 온화해진 미소에는 마음이 이끄는 것에 열정을 다한 이의 순수함이 엿보였다.
“저는 인생의 지도는 이미 그려져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오늘 이후의 지도를 모르는 것 뿐이죠. 볼 수 없을 뿐 이미 그려져 있어요. 때때로, 선택을 잘못해서 후회한 적도 있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 삶이 아닌가…. 그러니까. 삶이란 건 어떻게 보면 선택의 연속이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서 선택하는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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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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