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최동훈이 윤제균 김용화 보다 한 수 아래인 이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6.29 07: 03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올 여름 최고 기대작 ‘암살’이 지난 22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제작발표회를 갖고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사령탑 최동훈 감독은 전작 ‘도둑들’에 이어 이번에도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등 개런티 5억이 넘는 비싼 배우들을 내세운 총제 230억짜리 영화로 2015년 여름 극장가의 포문을 연다.
 이날 제작발표회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소소한 촬영 뒷얘기가 나왔는데 이중 하정우의 캐스팅 비화 한 토막도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최동훈 감독은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장어덮밥을 먹으며 하정우에게 ‘암살’ 초안을 설명했고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라는 역할을 제안했다고 한다. 마침 ‘언제 불러 주시나’ 기다렸다는 이심전심의 하정우도 다른 스케줄을 비워가며 선뜻 최동훈 호에 승선하게 됐다는 훈훈한 뒷얘기였다.
‘전우치’(09)가 살짝 아쉬움을 남겼지만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04)부터 ‘도둑들’(12)까지 단 한 번도 흥행 굴욕을 겪어보지 않은 최동훈은 봉준호와 더불어 국내 모든 배우들이 한번쯤 불러줬으면 하는 선망하는 연출가 중 한명임에 틀림없다. 누가 감히 그의 섭외에 ‘바쁜데 매니저와 얘기해보라’며 튕길 수 있을까.

그럼에도 최동훈의 신작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드는 건 그가 언제부턴가 이야기나 연출력 보다 호화 캐스팅과 국내 최대 같은 규모에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최 감독이 ‘전우치’를 끝내고 케이퍼 필름이라는 회사를 차려 쇼박스와 세 작품을 계약할 때부터 이는 예견된 일이었고, 여기에 한방 비즈니스 성격이 강한 영화 산업의 양적 팽창을 감안한다면 이런 행보를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 같은 그의 초창기 반짝반짝하던 상상력과 오밀조밀한 이야기 구성력과 연출 실력 등을 떠올려본다면 그가 너무 일찌감치 블록버스터 세계에 발을 담근 게 아닌가 안타깝다. 거대 자본을 만나 매번 큰 거 한방씩 터뜨려야 하는 그의 심적 부담감과 중압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도둑들’ 때처럼 이번에도 역시 “요즘 걱정돼 잠을 통 못 잔다”며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위기의 한국 영화를 구원할 부동의 4번 타자까진 아니어도, 한국 영화계가 그에게 거는 기대는 결코 얕지 않다. 작년 1700만 명을 동원한 ‘명량’까진 아니어도 ‘국제시장’ 수준의 1000만 영화가 올 여름 또 한편 나와야 한다고 했을 때 그 주어는 ‘암살’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친일파를 제거하는 독립군들의 비밀 결사조직 이야기는 한국인들의 반일 DNA에 강하게 불을 지필 것이고, 월척 손맛을 본 최동훈이 이를 순진한 계몽 영화로 만들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동료 감독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각본과 연출력을 겸비한 그가 유일하게 소홀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아마 캐스팅과 관련된 평판일 것이다. 흥행 감독이 구매력이 검증된 비싼 배우들과 협업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래이고 이치일 것이다. 한때 김지운 감독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당대 최고인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을 쓰는 바람에 엎어진 영화가 줄을 이었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선수는 또 선수를 알아보게 돼있다.
 하지만 호화 캐스팅도 모자라 누구누구 사단, 싹쓸이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그건 빌딩과 슈퍼파워를 가진 흥행사가 보여야 할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두 번이나 불러준 감독에 대한 고마움과 친밀함을 ‘나의 든든한 백’으로 표현하는 해맑은 배우 역시 인물 조감독 오디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힘없고 진짜 백 없는 무명 배우들의 설움과 비탄을 단 1분이라도 헤아려봤을까.
그런 점에서 투자사의 반대를 설득해내며 하지원 김인권 이민기 강예원 등을 주연으로 만들어낸 윤제균 감독과 김아중 하정우를 믿고 보는 배우로 탈바꿈하게 한 김용화 감독이 한국 영화의 저변 확대에 더 기여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탐내는 티케팅 파워 갖춘 배우를 일렬종대로 세우는 게 과연 한국 영화를 위해 어떤 이득이 될까. ‘도둑들’의 막내까지 김수현을 쓴다면 좁은 문을 바라보며 노심초사 기회만 엿보는 신인과 무명들은 대체 가져야 할 희망이 있기는 한 걸까.
 영원한 현역 임권택 감독과 태흥영화사,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와 ‘여고괴담’ 시리즈를 만든 씨네2000 이춘연 대표, 그리고 ‘소수의견’을 가져온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감독이 지금까지 후배 영화인들에게 존경받는 건 한국 영화의 소중한 자산인 배우와 스태프를 풍성하게 한 공로를 인정받기 때문일 것이다. 최동훈 감독이 전지현과 랑데부하고 2년 치 스케줄이 꽉 찬 하정우를 장어덮밥 먹으며 손쉽게 캐스팅하는 게 배 아픈 게 아니라, 그들의 연대가 마치 승자독식처럼 보이기 때문에 속 쓰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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