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5’ 골치 아픈 딜레마는 내려놓고 화력에 집중한 흥행 종결자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7.01 06: 47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저예산 영화 ‘터미네이터’가 첫 선을 보인 1984년, 지방 동시 상영관에서 받았던 충격과 감동의 여진을 여전히 잊지 못 한다. 요즘에야 흔해 빠졌지만 당시만 해도 시간을 점프하는 타임 슬립과 사이보그의 등장은 관객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참신했고, 인류애 회복이라는 거창한 메시지의 울림 또한 컸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람보나 코만도 같은 냉전 장사에 열을 올리던 할리우드 영화의 위엄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도 바로 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은 바로 여주인공 사라 코너로 상징되는 여성의 힘에 이 영화가 굵은 형광펜 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지능을 앞서기 시작한 로봇에 맞서 인류 멸망을 막아낼 최후의 전사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의 활약과 모성은 이 시리즈물이 여타 SF 블록버스터들에 비해 한 수 위로 대접받는 중요 포인트 중 하나였다.
향상된 특수 효과와 CG로 SF 액션물의 기준점이 된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엄지 척과 “I'll be back”이라는 명대사로 지구촌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리고 6년 만에 리부트 버전으로 만들어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관객 상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29일 공개된 최신판 ‘터미네이터’는 명불허전까진 아니어도 원조 팬들의 향수를 무한 자극하면서도 새로운 손님들의 취향을 적절히 안배한 이야기와 화면으로 무장했다는 느낌이다. 125분간 휴대전화를 들춰보지 않았을 만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왕좌의 게임’ ‘토르: 다크 월드’에 이어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연출한 앨런 테일러 감독은 기존 익숙한 캐릭터를 재가공하면서 시간과 공간적 배경을 미래와 과거, 현재로 3분할하는 방식으로 드라마적 입체감에 신경 썼다. 존 코너와 사라 코너, T-800과 카일 리스 등 주요 캐릭터들이 미래를 구하기 위해 과거로 향한다는 기존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면서 각각의 타임 라인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심경 변화와 사건에 관객이 빠져들게끔 곳곳에 이야기 덫을 잘 설치했다는 인상이다.
이번 ‘T5’는 2029년 존 코너가 이끄는 인간 저항군과 로봇 군단 스카이넷의 미래 전쟁을 시작으로 1984년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구하기 위한 과거 전쟁, 그리고 스카이넷의 출현을 막으려는 2017년 현재 전쟁을 순차적으로 그린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T-800 역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이번에도 사라 코너를 지키기 위해 여전히 몸을 사리지 않고 악랄한 인공지능 로봇을 저지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인다. 때때로 “나는 늙었다. 하지만 아직 쓸모 있다”는 대사로 자신을 식상해 할지 모를 관객의 허를 먼저 찌르는 무장 해제 유머도 구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가장 업데이트 된 나노 터미네이터 T-3000으로 변신한 존 코너와 마주한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의 협공이 펼쳐지는 현재 전쟁 시퀀스다. 제니시스 프로그램 활성화를 막기 위해 2017년으로 점프한 주인공들이 의외의 인물 존 코너를 이곳에서 맞닥뜨리게 되고, 최첨단 나노 입자로 만들어져 제거가 원천 봉쇄된 T-3000으로 변한 그와 힘겨운 사투를 벌일 때는 대강 결말을 눈치 채고도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는 초반 10분간 올드 팬을 위해 등판한 페이스메이커 이병헌이다. 몸에 쫙 달라붙는 미국 경찰복을 입고 흐물흐물한 액체 로봇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이병헌의 T-1000 연기는 역시 흠잡을 데 없었다. 캐릭터 특성상 감정 연기 보단 레이저라도 뿜을 것 같은 차가운 눈빛 연기와 CG 처리에 용이한 몸놀림이 관건이었을 텐데 그가 왜 할리우드에 재구매되는 유일한 한국 배우인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의 잇단 흥행이 금융 위기 극복 이후 각본, 각색에 돈을 푼 결실이라는 분석에 동의하는데 ‘T5’의 각본을 봤더니 리타 캘로그리디스였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아바타’ 기획자이자 ‘셔터 아일랜드’의 각본가였다. 사라 코너가 좀 더 화려하고 늘씬했더라면 어땠을까 살짝 아쉽지만, 평범한 소녀에서 강인한 여전사로 거듭나는 인물인 만큼 이 정도에서 만족키로 하자. 영국 출신으로 드라마 ‘닥터스’로 데뷔한 에밀리아 클라크는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로 나와 인지도를 높였다. 한 미국 비평지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100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15세 이상 볼 수 있고, 7월 2일 개봉해 ‘연평해전’과 맞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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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네이터5'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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