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영화감독은 정년이 없는 직업이다. 어찌보면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예술 하는 직업이 영화감독이다. 연륜과 내공이 깊어질수록 더 존경받고 인정받는 게 당연할 터. 현실은 거꾸로다.
현역에서 뛰는 60대 감독은 천연기념물이고 50줄에만 들어서도 등 떠밀려 강제 은퇴하기 십상이다. '친구' '똥개'의 곽경택 감독이 "나이 먹는 게 서럽다. 주류에서 밀려나니 투자 받기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 할 정도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쉰. 요즘 사회적 기준으로는 한창 힘쓸 중년이건만 지난 수 년동안 영화 만들기 힘든 비주류의 설움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연출료 싸고 제작사 말 잘 듣는데다 머리 팍팍 돌아가는 젊은 주류 감독들에 밀려서..
얼마전 곽 감독을 잠깐 볼 기회가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뿔테 안경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수 년 전 '미운 오리새끼' 개봉 즈음에 봤던 때와 달리 피부도 한결 탱탱해진 모습이다. "보톡스라도 맞으셨냐?" 농담을 건네니 선뜻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에 "젊게 살아야겠다. 젊어 보이고 젊게 일하고.."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그러고 보니 연출에만 신경 쓰고 차림새에 무심하던 곽 감독, 눈에 확 들어오게 세련되고 '영'하며 '쿨'해졌다.
"'친구2'가 좀 되고 나서 (자신에 대한 투자 등이)풀리는 것 같아요.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찍을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이제 뼈저리게 느낍니다. (영화가)뭔지를 알고 제대로 해볼만한 나이가 됐는데 정작 제 주위에 또래 감독들이 거의 없어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저도 비주류의 설움이 어떤건지 톡톡히 맛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새 영화 '극비수사'의 흥행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에 연출 곽경택의 이름을 걸고 찍을 수 있을 지 없을 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라는 진정성과 절박함이 배어나왔다.
뚜껑을 열고 2주째. '극비수사'는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어서며 곽경택의 묵직한 존재감을 영화계에 알렸다. "곽경택 아직 살아있네!" 감탄사들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오는 중이다. 영화관입장관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6월18일 막을 올린 '극비수사'는 1일 하루 동안 6만2천명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 240만명을 기록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월드'와 멀티플렉스의 대규모 지원을 받는 애국영화 '연평해전' 등 강자들과 맞붙어 일궈낸 성적이다. 눈에 보이는 흥행 수치, 그 이상의 성과와 결실을 내포하는 관객수인 셈.
곽 감독은 '극비수사' 개봉에 앞선 OSEN과의 인터뷰 등에서 "남들이 반짝반짝하는 영화를 찍을 때 나는 된장 같은 이야기를 들고 왔다"며 "시나리오를 열심히 쓰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고초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몇 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쳤어야 했고, 투자사로부터 반대 의사를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어서 하루는 이 이야기를 할만한 감독이 안되나? 남들은 번쩍번쩍한 영화를 쓰는데 나는 된장 같은 이야기 들고 와서 찍자고 하니까 그래서 안 해주나? 그런 시간이 있었지만, 나름 소신을 갖고 오게 됐다. 김윤석 씨가 도와주고 유해진 씨가 합류하고 투자가 진행되면서 영화라는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섰다"고 했다.
'극비수사'까지 오는 길이 고되고 서글펐겠지만 곽 감독은 이번 흥행으로 다시 힘을 얻었다. 그의 감독 인생 2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엔터테인먼트 국장]mcgwir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