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요즘 대세 예능이라고 불린다. 스타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무기로 인터넷 방송을 하는 구성인데, 네티즌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면서 벌어지는 돌발 상황이 참 재밌다.
무엇보다도 같은 사안이라도 재기발랄하게 바라보며 즉각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네티즌의 대화와 이를 방송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재치를 덧입히는 제작진의 편집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높이는 요소다. 네티즌의 재밌는 대화를 찾고, 자막을 입히며, 컴퓨터 그래픽을 의뢰하는 일련의 편집 과정을 책임지는 이들이 바로 조연출의 몫이다. ‘마리텔’에는 예능국을 배경으로 했던 KBS 2TV ‘프로듀사’ 김수현처럼 인물 좋은 PD는 드물지만, 웃음을 만드는 데 최적화된 이들이 가득하다.
‘마리텔’은 2명의 메인 PD인 박진경, 이재석 PD와 6명의 조연출, 그리고 8명의 작가가 힘을 합쳐 만든다. 시청자들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로 기발한 편집 신공을 보여주는 조연출은 김해나, 오은샘, 손수정, 권해봄, 김우중, 조주연(첫번째 사진, 왼쪽부터)이다.
다른 프로그램도 그렇지만 ‘마리텔’ 제작진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빼고 매일 방송국에서 살다시피 한다. 특히 인터넷 생방송 촬영(일요일)을 한 다음 주는 6일 만에 방송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빡빡하다. ‘마리텔’은 2주에 한번씩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은 2주 단위로 일정이 돌아가요. 일요일에 녹화를 하는데 전반전 녹화를 마치면 바로 방송국으로 보내죠. 그때부터 편집을 시작하는 거예요. 저희 말고도 편집을 해주는 다른 조력자들이 있어요. 1차 편집을 하고 월요일부터 가편집을 하죠. 화요일에 시사를 하고요. 수요일에 시사 때 나온 수정사항을 바탕으로 다시 편집을 해요. 목요일에 자막과 컴퓨터 그래픽(CG)을 입히는 작업을 하죠. 보통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을 새요. 금요일에 웃음 더빙과 다시 시사를 하죠. 방송 당일인 토요일까지 편집을 해요.”(손수정)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아무래도 네티즌의 재밌는 대화를 찾는 일이죠. 화면에 나오는 대화가 모두 웃겨야 하니까요. 생방송 중 나온 대화를 모두 다시 봐요. 실시간으로 보기도 하지만 생방송이 끝난 후 다시 보죠.”(김우중)
컴퓨터와 잠시 몸을 쉴 수 있는 작은 쇼파가 있는 비좁은 편집실, 심지어 창문이 없는 편집실이 더 많다. 상암 MBC에는 간혹 창문이 있는 편집실이 있는데 황금 편집실이라고 불린단다. 햇빛을 볼 수 있는 황금 편집실은 몇 개 없다. 불을 켜도 어두침침한 분위기 속 편집실이 쭉 이어지고 그 곳에서 우리가 즐겁게 보는 ‘마리텔’을 비롯한 MBC 예능프로그램들이 탄생한다. 바쁜 일정 탓에 밤을 자주 새고,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이어지다 보니 예능 PD치고 아프지 않은 PD가 없다.
“이 프로그램 하면서 살이 3kg 빠졌어요. 보약과 홍삼을 동시에 복용하고 있어요.”(권해봄)
“위염과 위경련을 동시에 앓기도 하고요. 누군가는 장염과 위염에 시달려요. 누군가는 술을 많이 마시고요. 아마 PD들 중에 지병 없는 PD가 없을 거예요.(웃음)”(손수정)
MBC 예능의 편집은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믿고 보는 MBC 자막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모두 오늘 이 순간에도 편집실에서 씨름하고 있는 조연출들의 공이다.
“촬영하고 방송 전까지 편집기가 꺼진 적이 없어요. 저희가 편집을 하면 선배 PD들이 다시 보고 편집을 하죠. 계속 풀가동되고 있어요.”(권해봄)
“MBC가 편집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2차 가공을 통해서 수준 높은 웃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밤을 새도 행복하죠. 사실 지금까지 참여한 프로그램 중에 ‘마리텔’이 제일 힘들어요. 아마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제작진보다 언제나 높은 곳에 네티즌과 시청자가 있죠. 저희보다 웃긴 요소들을 많이 알고요. 그런 네티즌과 시청자들에게 웃음으로 만족을 시켜주려면 제작진이 고차원이 돼야 해요.”(손수정)
‘마리텔’은 일명 ‘병맛 CG’로 유명하다. 개그맨 조세호의 코에서 일만 대군이 쏟아지거나 백종원 요리를 맛보는 일명 ‘기미 작가’가 환상적인 맛 표현을 하자 우주로 날아가는 CG는 방송 후 큰 화제가 됐다. 인터넷에서 네티즌이 재미를 위해 대충 만든 B급 문화 가득한 CG를 주로 대중문화를 다루는 지상파 방송에서 만나는 일이 발생했다. 틀을 깨부순 이 같은 독특한 CG는 많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CG 때문에 늘 머리가 아프죠. 예를 들어 다솜 씨 화면에 나온 핵폭탄 같은 경우 CG 제작실에서 만드는데 하루가 걸려요. 저희가 CG 제작을 의뢰하면 몇 번의 수정 사항을 거쳐서 CG가 나오죠.”(김우중)
“보통 박진경 선배나 이재석 선배의 머리에서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나와요. 저희가 살을 붙여서 CG 제작실에 의뢰를 하죠.”(손수정)
“저희가 공포의 프로그램이래요. 아무래도 새로운 CG를 많이 요청하니까요. CG 만드는 분들과 조연출이 함께 있는 단체 채팅방이 있어요. CG 요청을 하면 울음바다가 돼요.(웃음) 자녀들도 있는 분들인데 저희가 방송 당일 낮까지 집에 보내드리지 않으니까요. 죄송하고 감사하죠. 그래도 CG가 화제가 되니까 뿌듯해하시는 것 같아요.(웃음)”(권해봄)
‘마리텔’ 제작진이 자막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웃기면서도 의미가 있는 것.
“자막을 한 줄 한 줄 쓸 때 고민이 많이 들죠. 평범하게 쓰면 안 되니까요. 한 장면이라도 센스 있게 하려고 해요. 비유를 섞어서 자막을 쓰려고 하니 굉장히 스트레스죠. 보통 1분 정도의 자막을 쓰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돼요. 전 사실 PD가 되기 전에는 TV도 잘 안 봤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인터넷 게시판을 처음으로 챙겨보게 됐어요. 인터넷을 봐야 네티즌의 센스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생방송 중에 인터넷 대화창에 나오는 말 중에 가끔 이해를 못하는 말이 있어요. 그럼 저도 검색을 하고 이해를 해요.(웃음)”(오은샘)
“대화창에 있는 재밌는 말을 적재적소에 넣어야 하니까 그 타이밍을 맞추는 게 중요하죠. 사실 백주부님(백종원)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단순한 요리 방송일 수 있는데 다른 프로그램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네티즌의 장난이거든요. 그런 장난을 적절하게 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방송의 본질을 잊으면 안 되니까요.”(조주연)
“‘마리텔’은 A급과 B급 문화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마리텔’을 이끄는 선배 PD들이 B급 장르를 지상파로 끌어들여 새로운 장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네티즌의 재밌는 반응을 단순히 취합하는 게 아니라, 그 반응 하나 하나가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은결 씨가 마술을 보여주면 마술을 시청자들에게 전달을 하잖아요.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죠.”(손수정)
인터넷 생방송에 참여하는 네티즌 중에는 재밌는 대화를 잘 이끄는 네티즌이 있다. 일명 인터넷 고수다. 이런 고수들의 대화를 찾아내는 몫은 제작진이다.
“대화창을 보고 있다 보면 눈이 아프죠. 그리고 방송에 적절하지 않은 게 많아서 이를 골라내야 하는 작업이 쉽지 않죠.”(손수정)
“다음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니까 ‘팟수’라고 상주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분들은 자주 보게 되죠. 저희는 투잡이에요. PD 겸 네티즌이요.(웃음)”(조주연)
‘마리텔’ 조연출 6인방의 인터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웃음을 만드는 최전선에 있는 PD들이기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웃음기가 들어가 있었다. 이들이 꼽는 최고의 편집은 무엇일까.
“김형석 작곡가한테 김일성 닮았다고 한 네티즌이 있었잖아요. 그 부분이 재밌게 잘 살아난 것 같아요. 예능적인 재미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편집이 됐다고 생각해요.”(김해나)
“네티즌이 백종원 씨에게 슈가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잖아요. 저희가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자막에 써서 재밌게 만든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권해봄)
“주연 씨가 만든 설탕 폭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해봄 씨 관련 CG가 재밌죠. 아무래도 표정이 리얼해서요.(웃음)
“제가 놀리기 좋게 생겼나 봐요.”(웃음)
“저희 팀 유행어가 있어요. 해봄 씨가 ‘내가 착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라’라고 말을 해요. 그게 유행어예요.(웃음)”(손수정)
“권해봄 PD가 평상시에는 착하죠. 그런데 제가 새벽 1시쯤 정말 생전 처음 듣는 욕을 혼자 하는 걸 들었어요. 뭔가 감정이 폭발한 거죠. 아마 편집하던 게 날아가서 화가 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요.(웃음)”(오은샘)
“기미 작가님에게 한자로 ‘미미’라고 쓴 부분이 있어요. 그걸 수정 언니가 썼는데 최고의 병맛 자막이라고 생각해요.(웃음)”(조주연)
권해봄 PD는 ‘마리텔’에 자주 얼굴을 드러낸다. 예정화와 운동을 하는 바람에 ‘극한직업 PD’라는 별명을 얻었고, 신수지와 볼링 대결에서 이를 악물고 볼링을 치는 예능감을 보여준 바 있다. ‘마리텔’은 제작진도 출연자처럼 카메라 앞에 거리낌 없이 나선다. 조연출들은 언젠가 자신이 TV에 나올 수 있겠다는 걱정 혹은 기대는 없을까.
“저도 생방송에는 몇 번 나왔어요. 다만 애초에 재미가 없으니까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가 스스로 빼죠.(웃음) 저는 권해봄 PD처럼 재미를 만들 수 없어요. 웃음 레벨에서 차이가 있죠.(웃음)”(김우중)
“아마 조만간 물이 빠질 거예요.(웃음) 제가 지겨워지는 날 교체되지 않을까요? 부모님은 방송을 보시고 표정 좀 예쁘게 지으라고 하셔요. 이왕 TV에 나올 거면 예쁘게 나왔으면 하시는 거죠.(웃음) 그런데 제가 당해야 재밌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예쁘게 나오겠어요? 방송에서도 말했지만 여자친구는 매번 생방송을 보고 안 좋아하죠. 방송 다음 날 싹싹 빌고 있습니다.(웃음) 그 정도의 불편함이 있긴 하네요.(웃음)”(권해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인터뷰에 게재된 첫번째이자 PD들이 고개를 치켜세운 모습의 사진은 ‘마리텔’ 조연출 6인방이 사진 기자에게 특별히 요청한 사안이다. 이 프로그램의 수장인 박진경 PD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찍은 사진 구도와 표정을 따라하겠다고 나섰다. 이유는 하나였다. 선배인 박 PD를 놀리기 위해서다. 30도가 넘은 한여름의 어느 날, 조연출 6인방은 가을에나 입을 법한 모자가 달린 긴 옷을 나란히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예능PD들답게 일상이 시트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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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