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 2초, 3초...방송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정지화면이니?
스튜디오는 물론 야외 촬영에 강한 '1인자' 유재석도 당황했다.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끊임 없이 물어봤지만 단답형으로 돌아왔다. 그룹 혁오의 리더 오혁은 자이언티가 어떤 점이 특이하냐는 질문에 10초 이상 대답을 미뤘다. 이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나. 앞에서 이들을 지켜본 '무한도전' 멤버들은 답답한 마음에 여러 차례 물을 마셨다.
그런데 이 모습이 묘하게 웃겼다. 제작진이 대신 대답을 해준 '마음의 소리'와 박명수의 "종교 음악을 하냐"는 사이다 같은 멘트가 분위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가수 자이언티와 혁오가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다. 방송 초짜가 보여주는 순진함과 수더분함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지난 4일 방송된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2015 무도가요제의 서막이 올랐다. 이날 뮤지션 자이언티와 그룹 혁오가 윤상, 지드래곤-태양, 박진영, 아이유와 가요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라인업을 완성했다. 이들은 나머지 가수들에 비해 다소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복면을 쓰고 노래할 때부터 멤버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가창력은 출중했다. 특색 있는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했지만 정체를 맞히기 어려웠다.
먼저 자이언티는 밥통 모양의 복면을 쓰고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이름으로 무대 위에 등장, 솔리드의 '이 밤의 끝을 잡고'를 불렀다. 귀가 발달한 심사위원들도 그의 정체를 추측하지 못했다. 자이언티는 복면을 벗었어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에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부끄러움에 벗지 못할 줄 알았건만, 유재석에게 귓속말로 "벗어보겠습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안경 속에 감춘 귀여움을 드러낸 자이언티는 "잠을 1분도 못 잤지만 버틸 수 있다. 두근두근 긴장된다"고 가요제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이어 멤버 오혁이 부채꽃 필무렵이라는 이름으로 김건모의 '어떤 기다림'을 불렀다. 얼굴을 가린 오색 부채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룹 혁오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독특한 음악성과 매력으로 입소문이 나 있는 뮤지션. 작사에 작곡, 편곡 능력까지 갖췄지만 실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아 심사위원으로부터 "누군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오혁은 자이언티보다 더 말을 못 했다. 간단한 질문에도 뜸을 들여 답답함을 안겼다. 유재석은 "15년 동안 가장 힘든 인터뷰"라고 표현했다. 부끄럼 많은 소년들은 가요제 출연에 "좋았죠"라고 간단하게 언급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자극했다.
한편 이날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박진영은 어디서 양탈이야라는 이름으로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을 불렀고,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선 아이유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를 불러 멤버들로부터 "함께 팀을 꾸리고 싶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어 윤상은 꿀리지 않는 꿀성대라는 이름으로 김창완의 '너의 의미'를 불렀다. 긴장한 탓에 그의 가창력은 사라졌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그가 보여줄 노래에 기대가 모아진다. 마지막으로 지드래곤과 태양이 육각수의 '흥부가 기가막혀'를 노래하며 뛰어난 춤 실력을 자랑했다. 이미 방송 전부터 누구인지 알려졌기에 지디와 태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역시 국보급 아이돌의 무대였다.
수 년 간 '방송물'을 먹은 연예인들은 본인이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해야 재미있을지 어떻게 멘트를 날리고, 리액션은 어떻게 할지 다 계산하고 있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그들의 방송이 재미있는 것이다. 치고 빠질 때를 정확히 알고 카메라 앞에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 신인들은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들이 인기에 무관심하다면 굳이 웃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방송 스킬을 쌓지 않았을 터다. 자이언티와 오혁이 그랬다. 이들은 마치 오염되지 않은 청정 1급수처럼 깨끗해서 앞으로 콜라가 될지 커피가 될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다.
자이언티와 그룹 혁오는 가수가 단순히 외모와 가창력으로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것 같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엄청난 무대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자이언티와 혁오가 '2015 무도 가요제'에서 어떤 소리를 낼지 기대된다.
purplish@osen.co.kr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