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류의 악녀가 탄생했다. 그동안 악녀 캐릭터라고 하면 늘 분노에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여자를 울려' 속 나은수(하희라)는 우아한 말투와 온화한 미소 뒤에 무서운 속내를 숨긴, 두 얼굴의 악녀였다.
지난 4일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여자를 울려'(극본 하청옥, 연출 김근홍) 23회에서 은수(하희라)는 진우(송창의)와 덕인(김정은)의 혼사를 막고자 움직였다. 덕인의 아들의 죽음과 진우(송창의)의 아들 윤서(한종영)가 관련이 있다고 직감한 것.
이날 은수는 약혼식 준비를 핑계로 덕인의 가게를 찾았다. 차를 마시자며 덕인을 불러낸 은수는 학교 앞 교통사고를 운운했다.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덕인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어 은수는 과거 교통사고에 대해 캐물었고, 목격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진우가 학교가 그만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실은 윤서가 덕인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은수는 덕인 스스로 의구심을 느끼고 진실을 파헤치도록 판을 만든 셈이다.
은수가 움직인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위치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시아버지 강회장(이순재)은 도련님 진명(오대규)의 과거 잘못에 대해 추궁했고, 차라리 사실을 고하라는 은수의 말에 진명은 "형수가 야망 때문에 형을 선택했다 뒤늦게 나를 통해 욕심을 채우려는 사실을 말해야 겠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아들 현서(천둥)는 박간호사(이다인)에게 아낌없는 애정공세를 퍼부었고, 그런 모양새가 은수는 탐탁지 않았다.
은수는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인물이다. 나긋한 목소리에 흔들림 없는 미소로 우직한 첫째 며느리 행세를 하지만, 실은 야망 가득한 무서운 여인이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아들 현서의 경영권 승계였다. 그의 진짜 얼굴이 드러날 때는 동서 홍란(이태란)과 갈등하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날 은수는 홍란뿐만 아니라, 현서와 덕인 앞에서 '민낯'을 보여줬다. 그동안 덕인의 전 남편 경철(인교진)이 긴장감 유발자였다면, 반성한 경철을 대신해 은수가 바통을 이어 받은 셈이다.
향후 '여자를 울려'의 관전 포인트는 경철과 이혼한 덕인과 진우의 순조로운 결합과 이를 방해하는 은수의 농간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부 시청자들은 은수 캐릭터와 배우 하희라의 괴리감을 지적하고 있다. 줄곧 선한 인물을 주로 맡아온 하희라와 이중적인 면모를 지닌 은수 캐릭터 사이에 거리감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고, 하희라의 본격적인 악녀 연기는 이제부터다. 하희라가 은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여자를 울려'의 재미를 극대화시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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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울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