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도도한 재벌남과 가진 것 없는 긍정녀의 만남은 여느 때와 똑같았다. '재벌남'은 자신을 '개본부장'이라 부르며 막 대하는 '긍정녀'에게 빠졌고, 결혼과 연애는 별개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깊어지는 사랑을 어쩔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재벌남 어머니의 이별 종용에 눈물의 이별을 선언하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여기까지는 딱 흔히 보던 드라마와 영화 속 이른바 '재벌 로맨스'다. 하지만 SBS 월화드라마 '상류사회'(극본 하명희, 연출 최영훈)는 달랐다. '비가 오는 날에는 헤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먹이며 사랑을 이어갔다. 톡 쏘게 발칙하면서도 뻔하지 않아서 더 유쾌하고 매력적인 새로운 '재벌 로맨스'를 탄생시켰다.
지난 7일 오후 방송된 '상류사회' 10회에서는 이지이(임지연 분)가 유창수(박형식 분)의 어머니(정경순 분)를 만난 후, 결국 "헤어지자"라는 말을 내뱉는 내용이 그려졌다. 눈물을 흘렸지만, 왠지 모르는 쿨한 분위기로 이별을 받아들였던 창수지만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와 함께 두 사람 사이는 반전으로 이어졌다. '비 오는 날에는 헤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말로 다시 한 번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며 단 몇 분 만에 다시 연인모드로 돌입했다.
사실 창수의 어머니가 지이를 만난 것까지는 매우 전형적인 드라마 속 전개다. 물론 지이 캐릭터가 밝고 통통 튀는 긍정녀로 창수 어머니도 '반할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여느 사모님과 다름없이 창수의 어머니는 아들의 약점을 공략하며 지이가 창수를 떠나게 만들었다.
그녀의 계산대로 지이는 자신 때문에 창수가 피해를 입을까 걱정하며 결국 먼저 이별을 선언했다. 창수는 처음부터 지이에게 결혼과 연애는 별개라고 선을 그은 상황이었고, 그 역시 지이의 이별 선언을 받아들이는 듯 했다. 이 지점부터 지이와 창수의 로맨스가 다른 드라마와 달랐다. 울며 매달리고 도망가는 로맨스 대신 서로 합의하에 쿨하게 연애를 지속하기로 했다(그것도 비를 핑계로). 두 사람의 로맨스를 그리면서도 캐릭터가 워낙 통통 튀어 '신선함'을 주고 있기도 했지만, 이별과 연애 앞에 뻔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커플이라 더 매력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이와 창수가 다른 드라마에는 전혀 없었던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두 사람 관계의 설정 자체가 지금까지 많이 봐왔던 것이기 때문에 크게 특별할 것은 없는 것이 사실. 이 특별하지 않은 듯한 커플을 더욱 상투적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이지이와 유창수, 각각의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재벌가 자제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앞으로 가지게 될 것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창수는 이걸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캐릭터다. 지이를 좋아해서 만나고 있지만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는 생각만은 변함없다. 그래서 지이의 이별 선언에 단번에 대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단호함 속에도 로맨틱한 면모는 숨어 있었다. 도도하고 유치한 듯 하면서도 속이 깊어서 지이가 원하는 대로 데이트코스를 고민하고, 닭살스러운 장난도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수를 표현하는 박형식의 연기가 그를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로 빛나게 만들었다.
임지연 역시 이지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드는 배우다. 그동안 영화 속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이라 지이 역할이 어울리겠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말끔하게 씻어내고 온전히 지이로 안방극장을 누볐다. 눈물을 흘리며 이별 선언만 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당당하고 긍정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이 잘 어울렸고, 창수와 한 화면에 등장했을 때의 시너지가 시청자들을 기분 좋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결국 창수와 지이의 로맨스가 지루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두 캐릭터를 탁월하게 해석해 매력적으로 연기하고 있는 박형식과 임지연의 공이 상당한 것. 현재 어떤 드라마의 멜로보다 설레고 궁금해지는 커플이 바로 이들이라는 반응. 아이돌에서 연기자로 쑥쑥 성장한 박형식과 영화 속 강한 이미지를 지우고 또 다른 색을 채우고 있는 임지연. 이 매력적인 두 배우가 '상류사회' 속 창수와 지이의 로맨스를 앞으로 얼마나 더 특별하게 그려갈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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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