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되고 싶었던 ‘불청객’ 영화의 탈선과 명연기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7.09 09: 35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작년 ‘명량’이 대박 난 직후 류승룡이 고른 차기작 시나리오는 모두의 예상을 깬 ‘손님’(유비유필름)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 감독에 어두운 결말. 예술적 성취가 기대됐지만 그만큼 모험이 될 수도 있었던 실험 프로젝트. 안타고니스트로 이성민이 붙었지만 자본에 대한 책임을 분담하기엔 류승룡의 분량과 역할이 컸다. 소속사의 만류에도 출연을 결정한 류승룡의 판단은 적어도 틀리진 않은 것 같다.
 영화가 많은 잔상을 남기고 전두엽을 자극하는 묵직한 생각주머니를 투척하는 창구라고 했을 때 ‘손님’은 제법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적당히 웃겼다가 끝에 가서 콧잔등 시큰하게 만드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PB 상품 같은 비슷비슷한 기획 영화가 즐비한 요즘 ‘손님’은 확실한 자신만의 색깔이 있고 사람을 긴장시키는 묘한 힘까지 갖췄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가 자신의 예술 세계와 유니크함을 과도하게 드러내려 할 때 대중 영화는 쉽게 궤도에서 이탈하고 1차 도달 지점인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만다. ‘손님’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건 감독과 류승룡이 좀 더 자신을 내려놓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더라면 적어도 흥행 여부를 떠나 걸작 또는 올해의 문제작 정도를 빚어낼 수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지도에도 안 나오는 1950년대 마을처럼 고립을 자초한 건 최대한 많은 걸 보여주고 주워 담으려 한 과욕에서 출발한다. 판타지 호러를 표방하다보니 몽환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느낌과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는 쥐떼에 집중해야 했는데 정작 다듬어야 할 드라마나 개연성에는 끝까지 정성을 다하지 않은 인상이다. 중간 중간 팬서비스 성격으로 끼워 넣은 ‘7번방의 선물’류 코미디 역시 생뚱맞고 어느 타이밍에 웃어야 할지 결정 장애에 빠지게 된다.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존중하지 않은 흥행 조급증이 부른 편집 에러 수준이다.
또 영화 대부분의 셀링 포인트를 8부 능선 뒤로 감춰놓다 보니 한 시간이 넘도록 감독이 깔아놓은 밑밥만 따라가야 하는 지루함도 감점 요소였다. 주먹밥 사건으로 광기에 휩싸인 채 발길을 돌리는 우룡(류승룡)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되나 마을에 창궐한 쥐를 쫓아준 뒤 약속한 아들 치료비를 한 푼도 못 받고 신체까지 훼손당한 채 마을에서 추방되는 그의 무기력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피리 불어 먹고 사는 악사에게 손가락은 신체 전부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럼에도 촌장(이성민)에게 역정 한번 내지 않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순박한 캐릭터라 해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 같은 설정은 손님이었던 우룡이 마을 주민의 응징자, 처단자로서의 돌변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 텐데 작가가 너무 쉽게 타협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촘촘하지 않았다.
신인 감독의 의욕 과잉이 다행히 패기로 비쳐질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배우들의 명연기 덕분이다. 멜로를 제외하고 다양한 장르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류승룡은 ‘손님’에서도 부성애 강한 아버지와 장애를 비관하지 않는 약장수의 낙천성, 무당 행세를 하며 촌장에게 이용당하는 미숙(천우희)을 감싸는 박애주의자의 면모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흰 약초 가루를 얼굴에 펴 바르며 응징에 나서는 우룡의 슬로우 신은 비장미가 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류승룡의 연기가 주로 몸을 활용한 비주얼 액션이었다면 상대역 이성민은 가히 디테일로 불릴 만큼 섬세한 내면 연기였고 한층 더 증폭돼 보였다. 살기 위해 지은 죄는 죄가 아니라며 죄책감을 합리화하고 종전을 함구한 채 마을의 권력을 유지하려 애쓰는 독재자 연기는 ‘이끼’의 정재영을 잊어도 될 만큼 빼어났다.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과 얼굴 각도를 5도만 틀면서도 온화한 미소 속에 가려진 음산함을 자유자재로 꺼내 보이는 노련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다만 벽장에 감춰둔 일본 군복으로 암시된 친일파 설정은 다소 투머치로 여겨졌다.
‘배우는 배우다’부터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연기돌의 모범 코스를 밟고 있는 이준은 딱 기대한 만큼만 보여준 것 같아 살짝 아쉬웠다. 우룡을 감시하고 그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조력하는 마을 차기 지도자의 불안해하는 연기는 실감났지만 쥐떼 공격에 쫓겨 고양이 우리에 들어가 울부짖는 모습은 다소 안쓰러웠다.
이에 비해 전쟁 과부이자 어쩔 수 없이 무녀로 살아야 하는 가엾은 미숙을 연기한 천우희는 ‘한공주’ ‘카트’의 연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해낸다. 선무당으로 살면서 마을 주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죄의식과 촌장에 대한 두려움, 우룡을 따라 도망치고 싶은 여자로서의 욕망 등을 경계선을 넘지 않으며 극적으로 보여준다. 극중 신 내림 받고 빙의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들린 듯한 천우희의 연기가 꽤나 충격적이다.
 ‘로드무비’ ‘스캔들’ ‘청춘만화’ 조감독 출신인 김광태 감독의 데뷔작이고 9일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bskim0129@gmail.com
'손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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