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제목은 3박이지만 영화가 조명하는 건 원 나잇 스탠드다.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어떻게든 사과나무를 심고 말겠다는 스피노자 후예들의 해운대 원정기는 군데군데 촌스럽고 우격다짐처럼 다가오지만 쉴 새 없이 큭큭 웃게 만든다. 비록 포복절도케 하는 강펀치는 없지만, 부지런히 날리는 잽 덕분에 웃음의 빈도는 제법 만족스럽다.
서울 변두리 고교 동창인 세 친구는 일찌감치 꿈을 접은 채 현실과 타협해 근근이 살아가는 잉여들. 명석(김동욱)은 그다지 명석하지 않은 머리 때문에 고시 낙방을 거듭하고, 진상 고객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는 콜센터 상담원 달수(임원희)도 출근이 지옥문인 비정규직이다. 그나마 넥타이 메는 제약회사 영업사원 해구(손호준)의 팔자가 조금 나아보이지만 그 역시 부진한 실적 때문에 해고 위기에 몰려 있다.
설상가상으로 명석은 잘 나가는 법조인 여자 친구의 괄시와 결혼 압박 탓에 분노 지수가 위험 수위이고, 걸 그룹 왕 삼촌 노릇하며 사는 달수 역시 자신의 본의 아닌 초식남 신세가 애잔하기 그지없다. 발기부전 복제 약을 파는 해구도 정작 자신이 성불구 장애를 겪으며 승무원 여자 친구에게 퇴출되기 일보직전이다.
문제는 신세 한탄에서 끝나야 할 세 루저들의 술자리가 ‘바다 보러 가자’는 일탈 욕구와 맞물려 무작정 해운대 행을 감행한다는 사실이다. 다음날 아침, 이들이 타고 온 명석 여자 친구의 BMW는 뼈대만 남은 채 모든 부품이 뜯겨나갔고, 영문도 모른 채 경찰과 조폭들에게 쫓기는 지명수배 신세가 돼 있다. 낯선 비키니 걸과의 화끈한 원 나잇을 기대한 세 남자는 불철주야 백사장에서 수작을 걸지만 돌아오는 건 따귀와 맥주병 조각 뿐. 여자도 꼬셔야 하고 공권력과 조폭도 물리쳐야 하는 세 남자에게 과연 해운대는 어떤 관용을 베풀까.
이 영화의 원제는 ‘주말의 왕자’였다. 쇼박스 투자팀장 출신인 제작자가 임필성 감독과 박해일 송새벽을 데리고 의기투합하려 있지만 2년간 극중 세 남자 주인공만큼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김상진 감독이 새 사령탑으로 가세했다. 시나리오는 세 루저남의 해운대 원정 소동극이라는 골격만 남긴 채 새로 인테리어됐고 제목도 바뀌었다.
‘주유소 습격사건’(99) ‘신라의 달밤’(01) ‘광복절특사’(02)로 한때 시네마서비스와 좋은 영화사의 영업 이익을 수직 상승케 했던 김상진 감독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영화를 빚어냈다. ‘이래도 안 웃을 테냐’는 식의 무리수 보다 절묘한 상황과 설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 관객이 알아서 웃게끔 유머와 코미디를 곳곳에 심어 놨다.
잔재주가 아닌 웃음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는 코미디 전문 감독의 재치와 여유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여성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여성의 신체 노출을 모두 편집한 것도 자식 키우는 40대 아저씨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넉넉한 여유였을 것이다.
임원희는 여러 작품에서 검증된 것처럼 넘치거나 모자람 없는 알맞은 크기로 적재적소에서 관객의 배꼽을 조준한다. 달샤벳 지율의 광팬인 그가 부산에 행사 온 그녀와 수중 키스에 이어 야릇한 하룻밤을 보내며 황홀해 하는 표정은 굉장히 웃프면서도 귀엽다. 김동욱도 모처럼 ‘커피프린스 1호점’ ‘국가대표’에서의 경쾌한 연기를 보여주며 웃음 게이지를 높이고, 순박한 인상의 손호준 역시 큰 화면에서도 잘 어울리는 배우임을 입증해 보인다. PPL이겠지만 명석이 여자들 앞에서 노보텔을 언급하며 허세 부리는 장면과 발바닥에 병조각이 박혀 다량 출혈되는데도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에서 많은 웃음이 나왔다.
윤제문 류현경의 활약 역시 영화를 살리며 세 주인공을 한층 돋보이게 해줬다. 12년 전 세 고교생 때문에 감방에 가야했던 조폭 두목 마기동 역을 맡은 윤제문은 해운대에서 이들을 다시 만나 복수를 벼르게 되는데 마약을 둘러싼 배달 사고 과정이 영화의 한 축이 되며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명석의 애인 지영을 연기한 류현경은 고상할 것 같은 변호사 입에서 기상천외한 욕설이 방언 터지듯 나오는 장면을 통해 신 스틸러 연기의 정답을 보여준다.
베드신 등 노출 수위가 비교적 낮고, 극중 등장하는 신종 마약도 코미디 소동극의 소재일 뿐인데 모방범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내린 영등위의 기계적인 등급 결정이 아쉽다. 영화사 더램프와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는 재심을 넣지 않고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106분.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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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