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너?"
무명이었던 배우 조정석의 진가를 한방에 높여준 영화 '건축학 개론' 속 한마디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입에 넣은 팝콘이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격한 웃음을 터뜨렸고, 더 지나치게 웃은 어떤 이들은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조정석만의 코믹한 에너지를 tvN 금토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극본 양희승, 연출 유제원·이하 오나귀)에서 다시 느낄 수 있게 됐다.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을 아는 영민한 배우다.
물론 외적으로는 큰 차이를 뒀다. 그때의 조정석은 힙합바지를 입고 정확하게 5대5로 나뉜 가르마를 소유한 개성넘치는 재수생이었다면, 지금의 조정석은 좀 더 말끔하고 잘생긴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잘난 척 하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스타 셰프다. 분명 캐릭터에 맞게 변화를 한 것인데 그의 안에 특유의 밝은 에너지는 살아있다. 드라마 속 그의 연기는 맞춤옷을 입은 듯 편안하게 느껴진다.
조정석은 '오 나의 귀신님'에서 레스토랑 셰프 겸 대표 강선우를 연기하고 있다. 그에게 대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녔을 뿐더러 훈훈한 외모와 센스있는 입담으로 방송 출연 후 적당한 여성 팬들을 거느리는 인기남이다. 그래서 그런지 잘난 척과 오만함이 몸에 배어있다.
지난 10일 방송된 3회에서 선우의 성격이 극대화됐다. 이날 한강에서 운동을 즐기다 그에게 길을 묻는 한 여성을 만났다. 그는 "저기"라고 말끝을 흐리는 그녀에게 "어떡하지? 제가 펜이 없는데"라고 말하며 사인을 받기 위해 다가온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마포대교의 방향을 묻는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깨알 같은 '납뜩이 오마주'로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웃음을 안긴 것이다.
이날 수 셰프 허민수(강기영 분)와 재료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선우의 거만함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처녀귀신 신순애(김슬기 분)가 빙의된 나봉선(박보영 분)은 아버지 신명호(이대연 분)의 기사 식당에 레스토랑에서 쓰던 고무 장갑과 캐비어, 간장, 참기름, 통깨를 선우 몰래 가져다주었다.
이로 인해 민수가 훔쳤다는 오해를 받았고 선우는 그에게 "신뢰가 깨졌다"며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내뱉어 앞치마를 던지고 나가게 만들었다. 결국 봉선의 짓이라는 게 밝혀져 다행히 상처가 봉합되긴 했지만, 선우의 불 같고 차가운 성격은 어쩔 수 없었다. 귀신이 씌인 이후 달라진 봉선을 눈여겨 보며 티격태격 귀여운 로맨스를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사랑에 빠진 선우의 모습은 어떨지, '조정석 표' 셰프에 기대가 모아진다.
데뷔 이후 드라마 및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면서 끊임 없이 변신을 거듭해 온 조정석은 인기작 속 코믹한 이미지를 섣불리 지우려 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꺼내쓰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를 떠올리면 한가지 모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갑게도 '오 나의 귀신님'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코믹한 면모를 유지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뒤바뀌는 복잡다난한 선우를 표현중이다.
한편 '오나귀'는 음탕한 처녀 귀신이 빙의된 소심한 주방 보조 나봉선과 스타 셰프 강선우가 펼치는 응큼발칙 빙의 로맨스. 금, 토요일 오후 8시 30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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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귀신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