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이 KBS 2TV 예능프로그램 '나를 돌아봐' 기자회견 도중 하차 의사를 밝히며 자리를 떴다. 현장에 모인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몰래카메라가 아니냐'는 반응까지 자아냈던 조영남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이후 100% 리얼 상황으로 밝혀지며 새롭게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었다. 조영남은 이경규와 제작진의 설득에 하차를 번복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조영남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엘루체컨벤션에서 열린 KBS 2TV 새 예능프로그램 '나를 돌아봐' 제작발표회에서 "조영남·이경규 팀이 분당 시청률이 가장 낮다", "조영남·이경규 팀은 시청률 점유율이 낮은데도 심의도 많이 걸렸다"는 박명수와 김수미의 말에 발끈해 "이렇게 모욕적인 말은 처음이다. 오늘부로 사퇴하겠다"라며 다짜고짜 행사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에 당황한 윤고운 PD와 파트너 이경규가 그를 붙잡기 위해 다급히 따라나섰고, 영문을 모르는 취재진 역시 그가 뛰쳐나간 자리만을 멍하니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김수미는 "노망났나 봐"라고 그의 뒷모습에 한마디를 더했다.
원조 욕쟁이 캐릭터 김수미와 자유로운 영혼 조영남이 모인 이번 기자회견의 모든 과정은 '나를 돌아봐' 제작진의 방송용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는 것이 이미 공지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 캐릭터의 충돌은 방송용으로 준비됐을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나를 돌아봐' 시범 방송에서 돌직구를 날리던 김수미, 몰래카메라를 선보이던 조영남이기에, 이번 일은 규모가 남다른 몰래카메라 형식의 에피소드로 여겨졌던 것.
윤고운 PD 또한 "조영남 씨가 라디오 생방송이 있어서 중간에 나가신 것"이라고 말했으며, 다른 관계자도 "조영남 씨가 원래 돌발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오늘 사건은) 재치 있게 봐 달라"라며 "라디오 일정 때문에 자리를 뜬 건데 그걸 재미있게 풀려고 하신 것 같다"고 일종의 해프닝으로 수습했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됐다. 이날 늦은 오후 제작진이 조영남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지만, 그의 프로그램 합류 혹은 하차 여부에 대해 미지수라는 반응을 전한 것. 이에 이번 일은 그간 자신의 캐릭터를 확고히 쌓아온 원로 방송인만 벌일 수 있던 '재밌는' 사건에서 모두를 무시한 '황당한' 사건으로 변모했다. '나를 돌아봐'의 한 관계자는 이날 밤 늦게 "파트너인 이경규 씨와 윤고운PD가 조영남 씨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설득했다. 조영남 씨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촬영을 거부했지만, 이경규 씨가 함께 하차하겠다고 하자 마음을 돌렸다"고 밝히며 모든 상황이 정리됐음을 알렸다.
데뷔 45년 차인 조영남은 '나를 돌아봐'를 통해 자신의 일에 대한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며 그로 인해 함께 일하는 매니저를 의도치 않게 힘들게 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조영남의 깐깐하고 까칠하고 욱하는 성질에서는 가수이자 화가의 삶을 사는 그의 아티스틱한 모습에서 발현되는 비범함이 묻어나 시청자를 수긍하게 했던 것. 이 과정에서 그의 철두철미한 프로 의식이 저변에 깔리지 않았다면, 그가 매니저 이경규를 힘들게 하는 모습이 시청자에게 그토록 큰 웃음을 안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에 조영남이 '나를 돌아봐' 제작진과 의기투합해 '잘 해보자'고 나선 기자회견 장소에서 제작진, 또 시청자와의 약속을 한순간에 저버린 모습은 큰 실망감을 안겼다. 조영남이 단지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돌발 행동은 그가 보였던 프로 의식과 전면 대치될 뿐만 아니라, 하나의 프로그램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린 많은 이들의 맥을 풀리게 한 것은 물론, 다른 이의 근거 있는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불통의 모습으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역지사지 콘셉트의 자아성찰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에 오점을 남겼다. 하차 선언을 번복한 조영남이 이번 일을 계기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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