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김연우가 만든 10주간의 기적은 그의 정체를 알면서도 기다리고 지지했던 시청자들이 함께 만든 기록이었다. 김연우로 인해 시청자들은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 하는 편이 더 재밌는 비밀(?)을 공유해왔고, 이는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김연우는 지난 19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에서 새로운 강자 노래왕 퉁키에게 패해 가왕 5연승에 실패했다. 42대 57의 결과였다. 마침내 그는 10주 만에 얼굴을 공개하게 됐고, 정체에 반전은 없었다.
이날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는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채 부채를 들고 나와 창을 불렀다. 5연승에 도전하는 그가 선택한 곡은 '한오백년'이었다. 청아한 대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노래를 시작한 그는 '한오백년'과 '진도아리랑'을 오가며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창을 해냈다. 이를 듣는 연예인 판정단 지상렬은 “눈물이 나오려 한다”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 노래왕 퉁키는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42대 57로 15표 차이였다. 노래왕 퉁키는 "아직도 소름이 돋아서 지금. 사실 큰 기대를 안 하고 준비하고 왔었는데 너무 큰 자리를 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고 소감을 표했다. 5연속 가왕 배출은 실패로 돌아갔고, 새로운 가왕의 신화가 시작됐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는 사실 처음부터 “김연우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 이미 탁월한 가창력, 독보적인 목소리를 마음껏 선보인 적이 있는 그이기에, 어쩌면 이처럼 정체가 금방 들통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계속해 여러 가지 곡을 소화해내며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줄수록, 보는 이들의 확신은 깊어만 갔다.
‘복면가왕’의 가장 큰 묘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수가 들려주는 예상치 못한 노래 실력, 그리고 그것이 밝혀졌을 때의 짜릿한 즐거움이다. 거기서 정체가 비밀로 지켜지면 지켜질수록 시청자들의 알아맞히는 재미는 더 커진다. 하지만 김연우의 가창력은 그런 재미를 뛰어 넘었다. 비록, 모두가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정체를 알고 있다 해도, 보는 이들은 매주 그가 또 어떤 노래를 가지고, 어떤 색다른 무대를 보여줄지 기대하며 기다렸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는 “잘하지도 않는 노래 오래 사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정말 행복했던, 그런 시간이었다. 엄마, 나 이제 얘기할 수 있어. 나야 엄마”라고 예의 유머 감각을 발휘해 시원섭섭한 소감을 밝혔다.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 자신이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맞는지 물었던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고, “다들 아셨듯이 모두 아시면서 쉬쉬했던 분위기 재미 있었다”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모두 알고 있었던 10주의 비밀은 사실로 판명이 났고, 이는 아마 가수 그 자신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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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