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5년을 맞은 관록의 방송인 이경규는 달랐다. 자신이 몸담았던 ‘힐링캠프’를 4년 만에 떠나며 남아 있는 후배 김제동을 배려해 웃음 가득한 꽃길을 만들어줬다. 3개월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농담을 던져가며 ‘힐링캠프’의 마지막 방송을 웃음과 감동으로 물들였다.
지난 20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는 각각 4년과 2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이경규와 성유리의 마지막 방송이었다. 사실상 프로그램 제목만 남고 4년 만에 확 바뀌는 ‘힐링캠프’. 두 사람과 함께 진행을 맡았던 김제동만 남는다. 500명의 시청자들과 김제동이 게스트와 소통하는 구성, 지금까지의 ‘힐링캠프’와 모습이 다르게 변화한다. 변화는 프로그램에게 위기와 기회가 된다.
이 가운데 이경규는 4년간 정들었던 프로그램을 떠나며 유쾌한 분위기를 형성, 남아 있는 김제동의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했다. 사실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함께 진행을 맡은 MC가 떠난다는 것은 남아 있는 MC에게 큰 부담감. 김제동의 “오늘 녹화 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라는 말만 들어도 알 수 있다.
김제동 역시 많은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먼저 떠나기도, 다른 MC가 떠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김제동의 어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이경규는 아쉬운 소감보다는 김제동과 앞으로 변화를 꾀할 프로그램을 먼저 챙겼다.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는 일 대신, ‘힐링캠프’의 개편 성공을 바라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경규는 몇 달 전부터 프로그램 하차 의사를 밝혀왔던 상황. 변화를 꾀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이 가운데 제작진 역시 4주년을 기점으로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이번 하차가 결정됐다.
그는 “시원섭섭하다”라면서 하차 소감을 밝힌 후 “‘힐링캠프’가 발전을 해야 하는데 내가 있는 것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의반 타의반 하차다”라고 하차 이유를 밝혔다. 이어 “돌아가는 형세가 내가 가을에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3개월 쉬었다가 10월에 보자”라고 개편 후 시청자 반응이 좋지 않으면 자신에게 다시 MC 제의가 올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또한 “김제동 씨가 잘되든 안되든 상관없다. 그냥 내가 3개월 후에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다. 동시간대 프로그램에 내가 들어가면 욕먹는 것이냐?”라고 뼈 있는 농담을 이어갔다. 이경규가 깔아놓은 웃음 멍석에 특별 MC였던 이휘재가 살을 보탰다. 자신 역시 MBC ‘세바퀴’에서 7년 만에 하차하며 남아 있던 MC였던 김구라의 미안해 하는 눈빛을 경험했다는 것. 이경규는 물론이고 특별 MC로 자리했던 이휘재의 배려는 앞으로 프로그램 변화를 이끌어갈 김제동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이경규의 진가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프로그램이 잘나가고 관심을 받는 행복한 순간에 주목을 받는 진행자는 많다. 허나 프로그램이 개편을 준비하고 심지어 자신 역시 하차라는 자의반 타의반의 선택을 하게 됐을 때 웃음 가득한 마지막 인사를 준비한 것은 흔치 않는 일이다. 무려 35년간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뼛속까지 예능인’ 이경규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경규는 ‘힐링캠프’에서 게스트에게 꼭 들어야 하는 무겁고 독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나, 스스로 폭로 먹잇감이 돼서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가끔은 버럭 화를 내며 제동을 걸기도, 가끔은 우는 소리를 해가며 폭로를 멈추길 바라기도, 가끔은 맞대응을 하며 재미를 높이기도 하며 유려한 진행 솜씨를 뽐냈다. 지난 해 S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힐링캠프’는 큰 변화를 맞는다. 사실상 프로그램의 상징과 같았던 이경규가 자리를 떠나고 소통형 토크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출발을 한다. 일주일 후인 오는 27일 개편 첫 방송이다.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힐링캠프’가 이경규가 남긴 배려 가득한 선물로 인해 다시 힘찬 발걸음을 떼게 됐다. / jmpyo@osen.co.kr
‘힐링캠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