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2006), '전우치'(2009), '도둑들'(2012), 그리고 이번 '암살'(2015)로 이어지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우선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배역들의 숫자가 여느 영화들에 비해 많다는 점, 또렷한 안타고니스트(주적)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멜로들이 예상지 못한 순간에서 '불쑥' 튀어나온다는 점, 런닝타임이 꽤 길다는 점 등이다. 인터뷰 도중 이런 화두를 슬쩍 던지자, 장황한 해명(?)이 뒤따랐다.
-영화 '암살'엔 액션신이 많다. 총격신도 꽤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육혈포가 아닌 총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증은 거쳤다. 안옥윤(전지현)의 모신나강, 염석진(이정재)의 마우저,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의 PPK, 영감(오달수)의 MP-28, 속사포(조진웅)의 톰슨 등이 그렇다. 중점을 뒀던 것은 화려하기보다는 바로 곁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였다. 길고 자세하게 보여주는 쪽을 선호한다. 악전고투하고, 힘겹게 이기고 나아가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총을 들고 뛰는 신은 절실함이 느껴져서 가장 좋았다."
-'도둑들'에 이어 자동차 액션이 또 등장했다.
"총격신도 어렵지만, 자동차 액션은 더 어려웠다. 특히 이번에는 30년대 차종들이다 보니, 속도가 나질 않았다. 카메라 트릭과 편집을 많이 사용한 게 '암살' 속 자동차 장면이다. 상해 촬영장에서 무리하게 세게 밟아서 겨우 찍었는데, 세트장 관리인에게 쫓겨날 뻔 했다. 다행히 마지막 촬영이 O.K컷이 나왔다."
-액션신 말고 멜로는 어떤가. 의외의 장면에서 뜬금없이 '불쑥' 등장하는 멜로에 당황할 때가 종종 있었다.
"뜸금 없나?(웃음) 멜로는 원래 뜬금없다고 생각한다. 액션보다 멜로가 더 어렵다. 살다보면 멜로는 뜬금없이 온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사고' 같은 거다. 일반적으로는 차곡차곡 준비해서 멜로를 하는데, 난 불쑥불쑥 한다. 멜로영화를 대게 좋아하지만, 재주가 없다.(웃음)"
-'타짜'엔 아귀, '전우치'엔 화담, '도둑들'엔 웨이홍이 있다. 그런데 이번 '암살'엔 오히려 타깃이 생각보다 불명확하다. 물론 영화 속에선 '타깃(타게트)'이라는 단어는 자주 등장하지만…회색이거나 존재감이 옅다. 명확한 안타고니스트의 부재다.
"이번이 다섯번째 영화인데, 그런 얘기를 매번 들었다. '타짜' 때는 아귀는 약하지 않나요, '전우치' 땐 화담은 약하지 않나요. '도둑들' 때는 웨이홍은 약하지 않나요, 였다.(웃음) 곰곰히 생각해봤다. 주적이 세면 좋은데, 그보다는 그걸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암살'이라면 암살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두려움도 있지만, 춤도 추고, 기다리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곳에 영화적 시간을 많이 썼다."
-맞다. 길다.(웃음) 런닝타임이 이번에도 좀 길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 좀 길다. 최선을 다해서 줄였다. 심각한 내 문제다. 런닝타임이 길다.(웃음) '타짜'도 2시간 20분, '도둑들'은 2시간 16분, 이 영화는 다행히(?) 2시간 19분이다. 다음에 내 꿈은 꼭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드는 거다. 하도 런닝타임이 길다는 소리를 들어서다.(웃음) 물론 줄일 수도 있다. '암살'은 현장 편집을 해보니 3시간 40분이 나왔다. 그래도 많이 줄인 거다. 줄인다고 해서 냉정하게 더 재밌고 흥미로워지는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실제로 런닝타임을 줄여도 봤다. 지금보다 7분 정도 짧은 버전을 만들어 봤는데, 만족이 안 되고 재미가 없었다. 양날의 칼이다. 런닝타임과 영화적 긴장감은 말이다."
-주요 캐릭터도 여전히 많다. 이건 꼭 요즘 아이돌 그룹 멤버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아이돌의 경우 팬들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해 숫자가 늘어났다. 혹시 관객이 몰입할 캐릭터를 충족시키려는 고도의 계산 아닌가.
"원래부터 그랬다. '도둑들'이 절정이었지만.(웃음) 대학교 4학년때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사에 가져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주인공이 5명이었다. 당시 그 영화사에서 '주인공이 5명이면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거절했다."
-차기작에도 이번 '암살'처럼 메시지를 넣을 생각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익숙지 않다. 또 메시지는 숨기면 숨길수록 좋다는 쪽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뭔가 메시지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 활극에 그칠 것 같아 싫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gato@osen.co.kr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