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가볍게 여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사람들의 심금을 적시고 있다. 자녀를 데리고 극장을 찾은 엄마가 영화에 빠져 하염없이 티슈를 꺼내고, 여자 친구 손에 이끌려온 남자 대학생도 훌쩍훌쩍 눈물을 훔친다. 혼자 온 중년남도 연신 고개를 파묻는다. 픽사가 만들고 칸이 알아본 ‘인사이드 아웃’이다.
먼저 이 영화의 역주행이 가파른 인기를 대변한다. 지난 9일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은 첫 주말 ‘연평해전’에 밀리며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지만, 2주차 주말엔 무려 93만명을 동원하며 같은 기간 53만명을 모객한 ‘연평해전’을 누르고 박스 정상을 밟았다. 19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206만명.
개봉 엿새째인 지난 14일부터 1위를 지키고 있는 ‘인사이드 아웃’은 관객 후기가 호평 일색인데다 ‘아직도 안 봤냐’는 SNS 강추가 이어지는 분위기를 감안할 때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을 기세다.
이 영화가 사람들을 파고든 이유는 뭘까. 픽사의 경이로운 상상력과 더불어 인간의 순수한 감성을 잘 표현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그냥 영화 보는 내내 펑펑 울었다’ ‘누군가 나를 토닥여주는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슬픔이란 감정은 이겨내야 하는 걸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후기가 줄을 잇는 배경이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11세 초등학생 라일리가 고향 미네소타와 정든 하키팀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엄마 아빠 품에 안겨 울 때, 그런 라일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감정 본부의 조이와 슬픔, 버럭과 까칠의 이구동성이 관객을 쉼 없이 들었다 놓고 있다. 행복한 기억이 자리한 가족섬과 엉뚱섬이 처참하게 붕괴되고, 조이와 슬픔이 본부로부터 이탈돼 복귀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잊고 살았던 동심과 자기애를 발견하게 된다.
지난 주말 초등학생 딸과 영화를 본 한 회사원은 “주인공 라일리를 위해 빙봉이 사라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며 “7번방의 선물을 보고도 안 울었는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보고 울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도 “감정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만 우는 줄 알고 좀 민망했는데 관객 절반 가까이 울고 있어 위안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항상 기쁨을 슬픔 보다 상위 개념으로 여기고 슬픔을 억누르고 사는데 익숙했던 한국 관객이 용수철처럼 눌러 놓았던 슬픔이란 감정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 동력인지 깨닫게 됐다는 평도 눈에 띈다. 그동안 애써 멀리하고 인색했던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슬픔에게 미안함을 느꼈다는 일종의 자성론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박규영 프로듀서는 “인사이드 아웃의 인기는 관객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타협이 아닌 화해를 청하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며 “역경을 극복하는 힘은 역설적으로 슬픔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가 다시 한 번 환기해주고 있는데 그만큼 요즘 한국 사회가 고독하고 고단하다는 반증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bskim01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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