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은 만성 변비에 시달리다가 극적으로 만난 고마운 바나나 대변 같은 범죄 액션물이다. ‘그래 이런 게 잘 만든 영화지’라는 반가움과 함께 대장 속 숙변이 한 번에 유체 이탈되는 것 같은 쾌감의 향연이었다.
‘베테랑’을 통해 연기 천재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은 유아인의 공로가 지대하지만, 극중 부글부글 끓게 하는 주먹을 부르는 재벌 3세 조태오가 대체 어느 기업의 ‘도련님’을 실제 모델로 한 건지 영화 관람 내내 무척 궁금했다.
노련한 창작자 류승완 감독이 특정 회사의 관련자 한 명을 집중 탐구했겠느냐마는 영화를 보다보면 몇몇 재벌가 2, 3세의 일탈 전력과 그들을 둘러싼 갖가지 해괴한 루머가 절묘하게 오버랩 되는 장면이 나와 흥미를 돋운다.
이 영화가 리얼리즘에 한발 바짝 다가간 웰메이드 액션극인 건 광역수사대 형사들을 실감나게 그린 것과 더불어 조태오라는 재벌 3세와 그쪽 집안 공기와 정서를 굉장히 세밀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증권가 찌라시나 카더라 통신이 아닌, 실제 재벌가에 발 담갔던 이들의 증언과 목격담이 시나리오 곳곳에 묻어있었다.
검찰 소환 조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재벌 회장의 중환자 코스프레와 상속을 둘러싸고 벌이는 이복 형제간의 지분 다툼은 밑반찬 수준으로 다뤄진다. 류승완 감독의 꼼꼼한 취재력에 감탄한 건 조태오가 이종격투기 선수 수준의 파이터이고, 외국 바이어들과 있을 땐 국가 경제를 위한 유능한 기업인으로 비쳐지는 대목에서였다.
TPO에 맞춰 필요한 표정과 언행을 수시로 바꾸며 사는 재벌 후계자의 가면놀이 같은 장면이었다. 특히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찾는 이종격투기 옥타곤 링에서 상대 선수 발목을 분질러야 직성이 풀리고, 콜라병 몸매의 여성에게 마사지를 받으며 계열사 아파트 신규 광고를 컨펌하는 장면에서 내뱉는 심드렁한 말투는 밀착 취재가 아니고선 나오기 힘든 장면이었다.
이에 대해 ‘베테랑’ 관계자는 “류승완 감독이 특정 재벌이나 2, 3세를 모델로 한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뒤 “하지만 재벌가를 담당한 정보과 형사와 재벌가 내부 사정에 밝은 집사 출신 기업인 등을 소개받아 취재한 건 맞다”고 말했다.
대형 병원을 소유하고 통신 계열사를 넘겨주는 장면에서 A재벌 그룹이, 아파트 광고 모델 스폰서 설과 보복 폭행 장면에서 B그룹이, 연예인들과 마약 환각 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 C그룹이 연상되지만 영화가 특정 재벌을 타깃으로 한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bskim0129@gmail.com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