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 인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김한민 감독 겸 제작자에게 해고된 ‘사냥’ 천진우(35) 감독은 한남동에서 주연배우 안성기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연신 어깨를 두드려줬다는 국민 배우는 “천 감독 어쩌지? 지금으로선 내가 도울 게 마땅치 않네”라며 안쓰러워했다고 한다.
천진우 감독은 지금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게 뭐냐는 질문에 “시나리오를 돌려받고 싶죠. 제 열정이 농축된 새끼 같은 존재잖아요”라고 답했다. 벼랑 끝 심정이라는 그는 “김한민 감독님과 각색 방향에 대해 논의하다가 몇 번 언성을 높인 적이 있는데 여러모로 제가 미덥지 못해 일이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해고 통보는 언제 어떻게 받았나.
“최종 각색고로 갈등이 고조됐던 7월 6일 장원석 총괄 프로듀서 겸 본부장으로부터 짐을 싸서 일단 집에 가 있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9일 경질 의사가 담긴 김한민 대표님의 이메일을 받았고 16일 감독직 해지통보서가 집으로 날아왔다. 제작사 지분 2%와 그간의 노동의 대가로 1000만원을 준다는 내용도 있었다.”
-구체적인 경질 사유는.
“각색 버전에 대한 의견 차이와 연출가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제가 끝까지 주장한 과거 막장신에 대한 이견이 있었는데 신인이다 보니 제가 믿음을 못 드린 것 같다. 사냥꾼들이 사용할 다양한 총기와 주요 장면의 촬영 계획에 대한 제 답변도 미흡하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최고 흥행 감독인데 토 달지 말고 그의 지시를 따르는 게 맞지 않나.
“그렇다. 저를 감독으로 데뷔시켜 주실 분인데 제가 왜 거역하겠나. 그동안 감독님 지시를 충실히 따랐지만 사냥의 핵심 서사인 막장 신을 모두 거둬내라는 말씀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아무리 각본, 연출 계약했다 해도 중간에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맞다. 상호간에 문제가 생기면 교체되고 자진 하차할 수 있다. 문제는 얼마나 합당한 방식으로 경질이 이뤄졌느냐다. 좀 더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가 개선될 수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짐 싸게 했고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예산이 높아지면 제작자로선 흥행을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존중한다. 그런 지점의 고민이 왜 없으셨겠나. 다만 원작자가 드라마 훼손이라고 여긴다면 제 얘기에도 귀를 조금만 더 기울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김한민 감독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2012년 ‘활’ 제작실장을 통해 알게 됐다. 이후 빨치산 이야기인 ‘마지막 전쟁 지리산’ 시나리오를 썼고, 작년 초부터 6월까지 ‘봉오동전투’ 각본 작업을 했다. ‘봉오동전투’를 잘 마무리하면 ‘사냥’으로 감독 데뷔하게 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도 김한민 감독님이었다.”
-영화사에 근무 공간이 있었나.
“5월 1일부터 빅스톤픽쳐스로 정식 출근했고 제 방도 있었다. 5월 28일 각본, 연출 계약을 맺었고 해지 통보서 도착 두 시간 뒤 연출 계약 미지급금 1600만원이 입금되더라. 현재 그 돈과 각본료 2000만원을 합해 3600만원 전액을 영화사로 재송금한 상태다.”
-돈을 돌려보낸 이유는.
“각본 계약은 연출이 전제된 것인데 제가 연출에서 해고된 이상 각본 계약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계약을 무효화하기 위해 각본계약금 전액을 반환한 것이다.”
-일이 커지기 전에 김한민 감독을 왜 대면하지 않았나.
“방을 뺀 6일 이후 장원석 본부장을 통해 이메일로 수차례 뵙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바라는 건 뭔가.
“사냥 시나리오를 돌려받는 거다. 대학 진학도 미루고 시나리오에만 매진하며 청춘을 보냈다. 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이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내에게 아직 해고됐다는 얘기를 못 했다. 남편이 감독 된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밟혀 괴롭다.”/ 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