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유아인 "철들었단 말 들으면 슬퍼진다" [인터뷰②]
OSEN 김윤지 기자
발행 2015.07.30 08: 17

모든 배우가 말에 능하지 않다. 청산유수로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타고난 성향 등을 이유로 단답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배우 유아인은 그 중간쯤에 있다. 그동안 맡은 캐릭터 때문에 능청스러울 것 같지만, 공식석상이나 인터뷰에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가끔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그럼에도 섬세한 비유와 묘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고,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뚜렷하다. 때론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웃음을 안기는데, 그때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그 모습에서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 개봉 8월 5일)의 조태오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그만큼 조태오는 악랄하다. 재벌3세인 그는 안하무인 유아독존으로, 누구든 함부로 대한다. 부하 직원에게 분풀이하는 것은 물론,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조차 스스럼 없다. 그의 광기 어린 행동들은 정의로운 열혈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눈에 포착되고, 서도철을 중심으로 한 광역수사대와 조태오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시작된다. 황정민 오달수 정웅인 정만식 등 쟁쟁한 선배들과 맞붙지만, 조태오로 분한 유아인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성공적인 이미지 변신'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에게 조태오는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듯 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도 어느덧 서른의 문턱에 섰고, 연기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기 때문. "철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슬퍼진다"며 "아직"이라고 말하고 싶다는 유아인으로부터, '베테랑'과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정민과 유해진은 류승완 감독의 전작 '부당거래'(2010)에 출연했고, 황정민과 오달수는 영화 '국제시장'(2014)에서 함께 했다. 한 번씩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떻게 적응했나.
"적응을 잘 하는 편은 아니다. 예전보다 능글스러워졌지만, 편하지는 않다. 현장이 일하는 놀이터라고 하면 '베테랑'은 아저씨들과 놀아야 하지 않나. (웃음) 까불어도 정말 잘 받아주신다. 가까워지려고 애쓴다는 걸 알아주시는 거다. 선배님들은 제가 술자리에 자주 안 갔다고, 농담조로 서운해 하신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술자리를 많이 갔다. 다들 정해진 술이 있다. 오달수 선배는 막걸리, 황정민 선배와 유해진 선배는 소주. 혼자 맥주 마셨다."
=극중 최상무 역의 유해진과 주로 함께 등장한다. 유해진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조태오와 최상무는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조태오가 최상무를 일방적으로 찍어 누른다. 나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었다. 흔한 말이 아니라, 유해진 선배가 정말 편하게 해주셨다. 첫 촬영할 때 살짝 불러서 '잘해보자'고 하셨는데, 큰 힘이 됐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섬세한 부분이 비슷하다. 순간순간 얼굴에 일어나는 파장이 섬세하게 세공돼 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게 세밀하게 연기를 하시기 때문에, 그걸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극중 대부분 장면에서 정장을 입는다. 연기에도 영향을 미쳤나.
"걸음걸이부터 달라진다. 정장을 입으면 제스처도 달라진다. 조태오가 정장을 고수하는 건, 자신의 나이나 위치에 대한 열등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영화 '완득이'나 '깡철이'를 찍을 때는 시장을 찾아 어떻게든 낡아 보이고 오래된 구제 의상을 구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수입 원단으로 만든 고급 정장이다. 의상하시는 분을 따로 섭외해서 조상경 의상감독님께 소개시켜 드렸다. 부자들은 소맷자락 1mm까지 신경쓴다고 하는데, 비주얼적으로 중요하지 않을까 해서 섬세하게 신경 썼다."
=황정민과의 마지막 대결신이 인상적이다. 어땠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촬영 시간이 길고, 밤에만 찍어야 하는데 덥고 모기가 정말 많았다. 끝나고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실제로 잘 못 걷어차서 피멍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뻥 뚫린 야외에서 큰 동선으로 움직이니까 전작에서보다 속 시원한 부분이 있었다.
=여러모로 '베테랑'에 대한 흥행 욕심이 날 것 같다.
"엄청나다. 내가 진짜 상업영화 시장에 깊숙이 들어왔다는 생각은 든다. 흥행 자체 보다는 '엉겁결에 이런 여름 시장에 뛰어들어 경쟁하게 됐구나'라는 생각은 한다. 예전에는 흥행에 대한 태도가 심드렁했다면, 이제는 사랑 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세월의 흐름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얼굴은 지금도 앳되다. (웃음) 하지만 나이를 떠나서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 데뷔하는 신인이라면 이미지나 나이에 자유로울 텐데, 지금 얼굴과 이미지로 여러 작품을 했다. 덕분에 사랑 받았지만,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연기라는 것이 내 마음껏 노는 게 아니라, 어떤 계단을 밟아가면서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조태오를 포함해, 매 캐릭터 마다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힘은 어디서 오나.
"나이가 들면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배우는 당연히 연기를 잘해야 하고, 열심히 하는 건 칭찬 받은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20대 때는 스타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고, 그럴수록 좀 더 연기에 집중해 믿음직스러운 무게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류에 편승한 작품보다는 배우로서 나의 얼굴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들을 최대한 선택하려고 했다. 다만 그런 식으로 흘러오다 보니까 발랄하고 경쾌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주변에서 생각하신다. 사실 그렇지 않다. 가볍게 살고 있다. (웃음)"
=평소 꾸준히 성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철들은 것인가. (웃음)
"철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슬퍼진다. 아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항상 똑같다. 과거에는 뭐가 튀는 걸까 궁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차별화된 무엇을 보여드리려고 고민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한다."/jay@osen.co.kr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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