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가면’은 초반 빠르고 몰입도 있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허나 갈수록 부족한 개연성으로 인해 안방극장의 가슴을 여러 번 치게 만들었다. 보면 볼수록 허술한 전개는 오점으로 남았지만, 이 드라마가 줄곧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를 지킨 것은 주인공인 주지훈과 수애의 로맨스 덕분이었다.
지난 30일 종영한 ‘가면’은 자신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여자와 그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지켜주는 남자를 통해 진정한 인생과 사랑의 가치를 깨닫는 격정 멜로 드라마를 표방했다. 지난 5월 27일 첫 방송을 한 이 드라마는 얽히고설킨 네 남녀의 갈등과 사랑, 복수를 담은 통속 드라마였다.
똑같은 얼굴을 한 가난한 변지숙(수애 분)이 권력가의 딸 서은하(수애 분)의 삶을 살면서 벌어지는 경쟁과 암투, 음모와 복수, 비밀을 담았다. 이 드라마는 초반 적당히 자극적이며 착착 감기는 맛이 있었다. 극성이 센 편이었지만 당위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지숙이 자신과 똑닮은 은하로 위장한 채 불안한 삶을 살아가며 생기는 갈등은 흥미를 자극했다. 여러 번 뒤통수를 맞다보면 당황하다가 그 속에서 쾌감이 있다.
문제는 중반부터였다. 급박하게 진행된 촬영 일정은 전개에 있어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약점을 가리기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이야기 구도에 있어서 개연성이 많이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극중 인물들 모두에게 연민을 유발하는 설정을 가미한 것이 호불호가 갈렸다. 악인인 민석훈(연정훈 분)과 최미연(유인영 분)이 마치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석훈과 미연의 공작이 지루하게 펼쳐졌다. 석훈과 미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지숙과 최민우(주지훈 분)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물론 악인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든 것을 좀 더 풍부한 이야기로 여긴 시청자들도 있다. 이 드라마는 어떤 등장인물 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당위성 있는 전개일 수도, 짜증을 유발하는 전개일 수도 있었다.
이 같은 호불호가 확 갈리는 빈구석을 채운 것은 빠른 속도감이었다. 휘몰아치는 구조는 인물들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였는데, 쉴 틈 없는 속도감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설득력 없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답답함을 안겼지만 일명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마법 같은 드라마’였다. ‘비밀’을 집필하며 재밌는 통속 드라마를 만들었던 최호철 작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상속자들’을 통해 인기 드라마를 만들 줄 아는 부성철 감독의 쉽고 몰입도 높은 드라마를 만드는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로맨스 조합이 뛰어난 게 드라마 인기 비결이었다.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는 이 드라마의 묘미 중에 하나였다. 1인 2역을 하며 성격이 다른 두 여자를 완벽하게 표현한 수애. 수애는 최상류층과 하류층의 격차 있는 삶을 사는 두 여자를 표정의 차이만으로도 확실한 구별점을 줬다.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은하와, 어리숙하면서도 강단 있는 지숙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1인 2역의 어색함 없이 연기를 하는 수애 덕에 같은 얼굴을 하는 다른 여자를 보는 느낌은 묘했다.
주지훈은 강박증 있는 민우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극중 장치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어두웠다가 밝아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한순간에 마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한 표정 연기를 펼쳤다. 감정의 변화가 심한 인물을 연기하며 이 드라마가 가진 긴박감이 넘치는데 일조했다. 두 사람의 설레면서 재밌는 로맨스는 드라마의 인기 요소였다. 이들이 가까워질수록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부부 연기를 펼친 연정훈과 유인영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많은 비밀을 품은 듯한 모습을 연기했다. 특히 연정훈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이 따뜻한 느낌의 연정훈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를 잊게 했다. 유인영의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은 시선을 끌어당겼다.
한편 ‘가면’ 후속은 주원, 김태희 주연의 ‘용팔이’가 다음 달 5일 첫 방송된다. '용팔이'는 '장소불문, 환자불문' 고액의 돈만 준다면 조폭도 마다하지 않는 실력 최고의 돌팔이 외과의사 '용팔이'가 병원에 잠들어 있는 재벌 상속녀 '잠자는 숲속의 마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는 멜로 드라마다. / jmpyo@osen.co.kr
'가면'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