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한국 영화계에 중간이 사라졌다. 200~400만 관객으로 짭짤하게 수익을 내는 20억~40억원 제작비 영화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100만명만 넘어도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소품(?)들은 아예 천연기념물로 올려야 될 정도다. 왜? 한 마디로 장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올 해 한국영화 흥행 성적을 살펴보면 앞으로 한국영화 흥행 판도는 천만 노리거나 쪽박 차거나의 양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름 방학은 극장가 최대 성수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시장이 넓은만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필두로 한국영화도 메이저 배급사들의 대작들이 줄줄이 쏟아진다.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이상으로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입장에서는 흥행이 확실해 보이는 대작이나 톱스타 영화에 많은 관을 열어주는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중소영화들은 알아서 피해가는 시기다.
올 여름에도 최동훈 감독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암살'이 개봉 일주일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질주를 하는 가운데 톰 크루즈의 '미션임파서블 5'가 30일 막을 올렸다. 'MI5'와 '암살'이 쌍끌이로 전체 매출액의 70% 이상을 쓸어담고 있다. 여기에 한국영화로는 '베테랑'과 '협녀'가 한 두 주 차로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유아인-황정민-오달수-유해진 주연에 류승완 연출의 '베테랑'이나 이병헌-전도연-김고은의 '협녀'도 '암살'에 대적할만한 대작들이다.
예전엔 이렇게 고래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 와중에도 공포물 '고사'처럼 짭짤하게 깜짝 흥행을 거두고 돌아가는 중소규모 영화들이 자주 등장했다. 최근에는 성수기는 고사하고 비수기에조차 중소규모 영화들의 개봉이 쉽지 않은데다 흥행 성적도 저조하기 그지없다.
제작비를 수십 억원 들인 영화가 관객 70만명 근처에도 가지 못해 쪽박을 차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올 7월까지 '쓰리섬머나이트'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소수의견' '내심장을 쏴라' '무뢰한' '위험한 상견례2' '헬머니' 등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영화의 만듦새가 처져서,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살 길을 찾기 힘든 현재 영화계 주변 상황이나 영화팬들의 성향이 크게 작용했다.
연기파 톱스타들 조차 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 아니면 관객이나 멀티플렉스의 관심을 받기 힘들다는 요즘 영화계 기류를 벗어나기 거의 불가능하다. 류승룡의 컴백작으로 기대를 모은 '손님'(7월9일 개봉)조차 호평에도 불구하고 여름 대작들에 스크린을 뺏기고 강제하차시피한 지 오래다. 그나마 짧은 개봉 기간 동안에 90만 가까운 관객이 들었다.
하정우 연출 주연에 하지원까지 가세한 '허삼관'(1월14일)도 최종 스코어 96만명에 그쳤고 '살인의뢰'(3월12일)는 86만, 김우빈 주연의 '기술자들'(2014년 12월24일) 79만명의 성적이 이같은 대작 선호 추세를 반증하는 사례들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크게 베팅해서 크게 먹거나 아니면 아예 돈을 걸지 말라는 게 요즘 제작자들 사이에서 도는 자조섞인 우스갯 소리"라며 "제작비 30억, 40억원을 마련해서 영화를 찍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중간급 영화들이 거의 필망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한국영화계는 메이저 몇개사 위주로 돌아가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보고 느끼는 분위기로는 멀지 않은 게 아니다. 한국 영화계는 대작으로 천만 영화를 노리거나 아니면 중소규모 영화로 로또 1등만 기다리는 두 계층으로 분리된 지 꽤 오래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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