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재발견이라는 말도 입 아프다. 이준이 아이돌 출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잊게끔 만드는 연기력을 입증했다. 1부작이라는 사실이 아쉬울 만큼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나 장면에 대한 몰입도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다.
이준은 지난 31일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스페셜-귀신은 뭐하나'에서 첫사랑에게 차인 뒤 8년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20대 청년 구천동 역을 맡아 출연했다. 바로 전작인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인상 역과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시작부터 파격적이었다. 그는 여자친구 무림(조수향 분)과의 1주년을 위한 이벤트 중 이별을 선고받는 굴욕을 당했다. 전혀 태연하지 않은 얼굴로 태연한 척 “이유가 뭐냐”고 물었지만, “넌 낮에도 찌질하고 밤에도 찌질하다”라고 돌아온 충격적인 답변에 결국 이성을 잃은 채 날뛰고 만다. ‘풍문으로 들었소’ 때부터 이어져 온 이준표 ‘찌질’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
이후에도 그의 찌질함은 계속됐다. 자신에게 겁을 주는 무림에게 “가까이 오지 말아 달라”며 거의 빌다시피 부탁하는 모습은 물론이고, 급기야는 눈물까지 고인 채 이 구역 최고 겁쟁이임을 입증했다.
이 때 이준은 극중 무림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이라는 설정 때문에 허공에 대고 대사를 하고 동작을 취해야 했는데, 창피함을 잊고 진정으로 무림이 곁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그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전개가 후반부로 치닫자 그의 연기톤 또한 달라졌다. 극 초반 어딘가 허술하고 찌질하던 모습이 아니라, 바람난 줄 알았던 무림이 사실 투병 중임을 숨기기 위해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 것.
상실감에 공허해졌던 눈빛은 무림을 봤다는 할머니 부뜰(이용녀 분)을 보자 순식간에 생기가 돌았다. "몰랐다. 무림이가 왜 그렇게 가버렸는지 몰랐다"라며 "하루도 잊은 적 없다. 무림이를 하루도 생각 안 한 적이 없다. 미워하고 욕하면 되찾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랬다"라고 뒤늦게 고백하며 오열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보는 이들마저 눈물짓게 만드는 절절함이 느껴졌다.
이처럼 ‘귀신은 뭐하나’ 속 이준은 코믹과 슬픔을 오가는 탁월한 완급 조절로 80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꽉 채웠다. 흔히 아이돌 출신 배우들에게 숙명처럼 따라붙는 ‘발연기’라는 수식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무거운 역할이든, 가벼운 역할이든 그 경중에 상관없이 뛰어난 흡입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이준의 앞으로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 jsy901104@osen.co.kr
'귀신은 뭐하나'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