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5편 격인 할리우드 첩보 액션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이 개봉 엿새 만에 300만 관객을 가뿐히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갈 길 바쁜 ‘암살’로선 1주일 뒤 미행하듯 쫓아온 ‘미션’에게 뒤를 밟힌 셈이다. 이제 관심은 이 첩보물이 4년 전 전작 ‘고스트 프로토콜’의 레코드를 넘어설 수 있을 지다.
성공한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이번 ‘미션 임파서블5’ 역시 스케일과 현란함이 전편을 능가했다는 평가다. 그만큼 시각적 쾌감에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는 얘기다. 두바이 최고층 빌딩 외벽을 뛰어다니던 에단 헌트가 이번엔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리고, 몇 대의 BMW가 관객의 RPM을 높인 뒤 폐차장에 갔는지 모른다. 흥미로운 건 이중 많은 화면이 차이나머니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MI5’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파라마운트와 함께 중국 거상 마윈이 이끄는 알리바바 그룹의 투자를 받아 촬영됐다. TV 드라마와 영화 제작을 위해 마윈이 설립한 알리바바 픽쳐스가 오프닝 자막에 큼직하게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차이나머니를 끌어들인 할리우드가 대륙인들을 사로잡기 위해 주요 설정과 배경을 중화풍으로 꾸민 건 너무나도 당연한 비즈니스 접근 방식이었을 것이다.
대표적인 설정이 바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펼쳐지는 오페라 투란도트 장면이다. 에단 헌트가 테러 집단 신디케이트의 오스트리아 총리 암살을 저지하기 위해 잠입 수사하는데 그 무대가 바로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장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총리를 향해 총을 든 세 이방인을 발견하고 저격수 제거 과정에서 기지를 발휘한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할머니 죽음의 트라우마를 겪는 중국 공주 투란도트가 자신에게 구애하는 남성에게 수수께끼를 낸 뒤 틀리면 가차 없이 목숨을 앗아가는 내용을 담은 서정성 짙은 오페라로 유명하다. 공간적 배경이 북경 황궁인데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경극풍의 메이크업을 하고 출연해 눈길을 끈다. 영화에서도 귀에 익숙한 투란도트 선율이 5분 이상 등장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저격 타이밍을 표시해둔 음표가 클로즈업 돼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투란도트가 보여주기 식 이미지에 충실한 중화풍 설정이었다면 숫자 108은 보다 노골적인 친 중국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8은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인데다 108은 불교와 도교 사상과도 밀접한 숫자가 아닌가.
108은 에단 헌트의 육해공 활약 중 두 번째인 수중전에 등장한다. 에단 헌트와 단짝 요원 벤지가 신디케이트와 연루된 비밀 계좌가 담긴 장부를 빼내기 위해 군사기지에 잠입하게 되는데 깊은 수조 속에서 엄청난 수압과 싸우며 칩을 바꿔 끼워 넣어야 하는 저장소가 바로 108번이었다. 제작진은 왜 하고 많은 칩 저장소 중 굳이 108번을 선택한 걸까.
‘MI5’가 이렇게 영화 곳곳에 중국을 파고드는 왕서방 전략과 이미지를 심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과 바인딩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둡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시장 조사기관 Artisan Gateway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가 올 상반기 중국에서 거둬들인 흥행 수입은 33억 달러(약 3조7000억)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8% 증가한 것이며, 상반기 북미 수입(55억 달러)의 60%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 시장이 이제 ‘선택’이나 ‘교양’이 아닌 ‘전공 필수’ 과목이 된 것이다.
할리우드의 이 같은 중국 구애는 여전히 남아있는 중국의 자국 영화 보호 정책과도 무관치 않다. 외화의 개봉 편수와 시기 등 규제가 아직도 엄격해 자유 경쟁이 어려운데 이에 대한 돌파구가 바로 중국 자본을 태우는 협업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 국영 기업인 차이나필름그룹이 투자한 ‘분노의 질주7’과 '어벤져스2'는 중국 대박에 힘입어 전 세계 박스오피스 10억 달러(1조원)를 기록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반면 ‘터미네이터: 제네시스’와 ‘인사이드 아웃’ 같은 순수 할리우드물은 여름 성수기 블랙아웃에 걸려 개봉이 한참 뒤로 미뤄진 상태다.
중국 자본은 서서히 캐스팅에도 위력을 보이고 있다. 작년 개봉한 ‘트랜스포머4’에 판빙빙이 출연했고 이번 ‘MI5’에도 비중은 적지만 CIA 거짓말 분석요원으로 미모의 중국 배우가 가세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투자하는 중국 업체들이 자국 배우를 출연시키는 옵션 계약 역시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 활동이 뜸한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근황을 살펴보면 상당수가 중국과 뭔가를 모색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을 가졌지만 한국의 고급스런 때깔과 디테일을 만들어내지 못 하는 중국인들이 아직까진 돈으로 한국의 기술력과 경험, 노하우를 구매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머잖아 우리 밑천이 바닥날 것이고 그때도 과연 중국이 우리를 지금처럼 따뜻하게 맞아줄 것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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