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대리’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웃음기를 걷어내고 사도세자의 옷을 입은 김대명은 유약한 광인 사도세자를 연기하며 아버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면서도 늘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며 장희빈의 혼령에 씌어 미쳐가는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지난 7일 오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스페셜-붉은 달’(이하 ‘붉은 달’)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와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사도세자(김대명 분)가 뒤주에 갇히기 전까지 미쳐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경종대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영조(김명곤 분)는 피의 전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세자를 경종이 어린 시절을 보낸 저승전에서 키웠다. 저승전은 장희빈(조미령 분)의 저주가 걸려 있는 곳이었다. 장희빈은 저승전에 신당을 차려, 조선국과 후대에 임금이 될 이들에게 저주를 걸었고, 사약을 마시고 죽는 순간까지도 피를 뿜어내며 주술을 걸었다. 그런 저승전에서 세자는 장희빈과 그의 아들의 혼령을 보고, 들으며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다.
저승전을 찾은 영조 앞에서 세자는 고개 한 번 제대로 들지 못하며 영조의 질문에 저승사자 앞에 선 것처럼 두려워했다. 그런 세자를 앞에 둔 영조는 세자가 평소 소일거리로 읽는다는 귀신을 불러 모아 부리는 주문이 적힌 책에 대한 사실을 알고 “아들이라 보러 온 내가 잘못이다”라고 일갈하며 저승전을 차갑게 떠났다. 영조의 아들을 향한 차가운 태도는 세자를 더욱 유약하게 만들었다. 평소 영조가 아끼던 나인의 죽음에 대해 세자를 추궁하던 영조는 “귀신한테 홀려서 제 정신이 아닌 놈이 또 누가 있느냐”며 세자를 향해 활을 들었고, 화살은 아슬아슬하게 세자를 빗겨 나갔다. 두려움을 느낀 세자는 그날 밤 급하게 세손을 찾았다. 영조가 세손을 예뻐하니 세손이 사용하는 휘양을 쓰고 아버지의 앞에 가서 학질에 걸렸다 하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말한 세자는 다음날 영조를 찾았다. 영조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세손의 휘양입니다. 학질에 걸렸습니다, 학질에 걸렸습니다”를 반복하는 세자 앞에서 영조는 그를 미친놈 취급하며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조종하는 장희빈의 혼령 때문에 제 어미를 위협하고, 아들마저 위험에 빠뜨릴 뻔 했던 세자는 선희궁(이항나 분)의 고변으로 영조의 손에 의해 뒤주에 갇히게 됐다. 마지막 순간에도 맞지 않는 작은 휘양을 머리에 쓰고 살려 달라 외치는 세자의 눈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결국 영조에 의해 어둠 속으로 들어갔고, 또 다시 어둠 속으로 내쳐지게 된 세자는 마지막 순간에 “대체 당신에게 자식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애절한 한 마디를 남기며 뒤주 속으로 사라지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김대명의 굵지 않은 목소리와 힘없는 말투, 그리고 눈빛은 사도세자 그 자체였다. 세자가 지녔던 광기어림과 두려움, 분노, 원망, 외로움 이 모든 것은 그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 그의 흡입력 있는 연기는 자연스럽게 세자의 감정을 전달하며 보는 이를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tvN 드라마 ‘미생’ 이후 첫 주연 작인 ‘붉은 달’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을 찾은 김대명의 컴백은 그래서 더 반가웠다.
‘드라마 스페셜-붉은 달’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둠과 동시에 상상력을 덧붙여 사극 공포물로 재탄생 시킨 드라마로 김대명, 박하나, 박소담 등이 출연했다. / nim0821@osen.co.kr
‘붉은 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