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지금도 ‘장래희망’이나 ‘가장 존경하는 인물’ 조사를 간혹 하기는 하는데 예전에 비하면 운동선수들의 이름이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이지요. 체육계 스타들의 지명도나 입지가 확실히 넓어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 어른 가릴 것은 없겠죠.
그런 풍경을 실감할 수 있는 게 바로 경기 전후 선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혹은 집으로 가는 선수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문밖에 진을 치고 있는 팬들입니다. 부산 사직구장의 인파야 예전부터 유명했고 요즘에는 어딜 가든 그런 팬분들을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스타 선수들의 경우는 많은 분들의 사인 공세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SK 수호신인 정우람 선수도 경기 후 가장 사인요청을 많이 받는 선수에 속합니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 주차장에서 많은 분들이 정우람 선수를 기다리고 계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우람 선수는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성실하게 사인을 해주는 선수로 평판이 높습니다. 최근에도 주차장에서 10분가량 몰려든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사진촬영까지 해주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정우람 선수는 숨겨야 할 것을 들켰다는 듯이 수줍어하며 “웬만하면 사인을 다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라면서 “김광현이나 최정 같은 슈퍼스타에 비해 나는 사인 요청이 적은 편이라 괜찮다”라고 겸손해 하더군요. 여기에 “우리 팀의 슈퍼스타들이 다들 장가를 가서 그런지, 요즘은 기다리고 있는 팬분들이 예전에 비하면 줄었다”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수들이 수많은 팬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기를 마친 뒤라 피곤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죠. 시간이 급한 선수는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치거나 몇 분에게만 해주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인 받을 확률을 높이는 비법도 있다고 하네요. “가는 말이 좋으면 오는 말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정성스러운 사인 요청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선수들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선수들도 사람이니까요.
정우람 선수는 “선수들이 가장 좋아할 때는 자신의 등번호와 이름이 박힌 유니폼에 사인 요청이 들어왔을 때”라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팬임을 확실하게 인증(?)한 만큼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죠. 여기에 아무래도 상대적 고가의 물품이다 보니 사인을 하는 손놀림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수들도 사람이니까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유니폼이 아니라고 해서 차별을 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정우람 선수는 “꼭 유니폼이 아니더라도 깨끗한 사인볼도 선호한다. 구단 팬북도 좋고 사인북이나, 그도 준비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깔끔한 용지도 OK다”라고 팁을 건넵니다. 선수들이 펜이나 매직을 상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이는 필수겠지요. 선수들도 팬들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춰야 하듯이, 팬들도 되도록 정중하게 요청하는 것도 기본적인 매너입니다.
반면 선수들이 사인을 하면서도 찜찜해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정우람 선수는 “간혹 어디다 사인을 해야할지 고민될 정도의 지저분한 공, 혹은 찢어진 종이를 가지고 오는 분도 계신다”라면서 “아무래도 깔끔한 종이에 할 때와는 기분이 조금 다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정우람 선수는 “그렇게 시간이 가다보면 정성스레 준비한 다른 분들이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셈이지요.
여기에 요즘에는 특정 선수나 특정 구단 선수의 사인을 대량으로 받아 온라인 장터에 파는 분들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사인볼을 찾는 분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선수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면 곤란하겠지요. 여기에 위조 사인공이나 결제 등에서 애꿎은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어 구단에서도 신경을 쓴다고 하네요. 단순히 오고가는 사인볼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품격이 결정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skullboy@osen.co.kr
SK 담당기자
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