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재원이 조선의 16대 왕 인조를 되살려낸 듯하다. 금세 눈물이 터질 듯한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백성과 왕권 안정에 대한 걱정이 깃든 말투 등 행동 하나하나에서 인조의 깊은 고뇌를 전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1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화정'(극본 김이영, 연출 김상호 최정규)은 충신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조(김재원 분)의 모습이 제대로 표현됐다. 인조반정을 주도한 반대북 공서파(功西派) 김자점(조민기 분)의 조종 아래 인조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자점은 인조의 머리 위에 앉아 자신의 뜻대로 왕을 움직이려 했다.
정명공주(이연희 분)는 이날 인조를 찾아가 백성들을 위한 선택을 하라며 자신에게 역모 누명을 씌운 김자점과 조나인(김민서 분)을 처단할 것을 촉구했다. 정명은 인조에게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고 눈물로 애원했다. 반면 김자점과 조나인에게 백성의 안위는 없었다. 오로지 탐욕과 권력욕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자점은 여정과 함께 인조 집권기의 막후 실력자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감언이설로 인조를 눈과 귀를 막았다. 이들은 "왕권이 서야 백성도 있는 법"이라며 "조총부대는 광해의 사람들이다. 전하에게 언제 총을 겨눌지 모른다. 일단 도성을 피하라"며 정명의 조언은 무시하라고 설득했다. 결국 인조는 정명의 말을 믿지 않고, 자점과 나인의 말에 따르기로 결심하면서 도성을 떠났다.
물론 인조도 좋은 왕이 되고 싶은 야심찬 계획은 있었다. 하지만 평안도로 쫓겨났던 이괄(유하복 분)이 군을 이끌고 한양으로 쳐들왔기에 백성보다 왕권 안정을 택한 것이다. 사실 인조에게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있다. 광해(차승원 분)에게 억눌린 울분의 세월이 가슴 깊이 남아 그를 타지로 유배 보냈음에도 그의 그림자에 가려 기세를 펴지 못하고 있다. 정명이 조총부대가 목숨을 걸고 나라와 왕을 지킬 것이라고 했음에도 그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광해의 사람들이었던 그들이 자신을 믿고 따를 리 없다고 생각해서다.
인조반정을 일으킬 당시 인조는 거사를 직접 진두지휘하며 용맹한 기세를 드러냈었다. 도끼로 돈화문을 부수고 궁궐로 쳐들어 갔을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광해를 패륜자로 몰아 반정의 명분을 삼았던 인조의 기반은 한없이 약했고, 후유증은 이괄의 난으로 이어졌다. 인조가 도성을 떠나던 그 날, 인조를 따르던 백성들이 한 명도 없었기에 쓸쓸한 왕의 뒷모습을 보여줬다. 김재원은 마음 편히 왕위를 누리지 못하는 인조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백성들이 강 옆 길가에 서서 울부짖는 상황에도 그들을 버리고 가는 인조를 슬픔과 외로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담아 표현해냈다. 앞서 반정을 준비하는 인조의 모습에서는 김재원에게 살기가 느껴졌을 정도로 표독스러웠고, 반정을 통해 조선의 왕이 된 인조에게서 왕의 고뇌와 허무가 전해진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모습이 김재원에 의해 흥미롭게 그려져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인 것이다.
'화정'에 중반부터 합류한 김재원은 드라마 시작 전부터 캐릭터 연구에 몰입하며 남다른 준비를 해왔다. 왕의 날카롭고 예민한 면모를 표현하기 위해 다이어트를 했고, 말타는 장면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승마 연습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의 노력이 드라마를 통해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김재원이 그려나갈 인조에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purplish@osen.co.kr
'화정'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