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한 기운이 가득한 여름, 시원한 방 안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TV를 시청하는 것만큼 쉽고 편한 일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마디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우리 집이 신선놀이터가 아니면 과연 지상 낙원은 어디란 말인가. 그렇다면 MBC 예능 ‘무한도전’의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눈앞에서 보기 위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에, 강원도 평창까지 달려간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2015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찾은 사람들이라면 아주 잘 알 것이다.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강렬한 더위와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함, 이 심술 궃은 날씨에 시달리면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재미를 온 몸으로 느꼈다는 사실을. 브라운관으로 느낄 수 없는 현장의 중요성이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듯 싶다.
제작진은 앞서 웬만해선 가요제가 열리는 경기장을 찾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차는 막히고 배는 고프고 공연은 늦게 끝나고, 예년 ‘무한도전 가요제’가 그랬듯이 이번 영동고속도로가요제 역시 화려한 무대와 최고의 사운드를 가장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집에서 본방으로 보는 방법”이라고 방송을 통한 가요제 관람을 부탁했다.
하지만 ‘무도 덕후’들은 이 같은 제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13일 이른 시각부터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점프대에서 모여들었다.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를 보기 위해서다. 어떤 이들은 11일부터 찾기도 했다. 10~30대 젊은 관객들이 주를 이루긴 했어도 종종 가족 단위나 중장년 늦깎이도 눈에 띄었다. ‘무도가요제’가 2년 만에 돌아오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가 쏠린 것이다.
직장인 윤진희(26) 씨는 이날 OSEN에 “‘무도가요제’는 매번 수도권에서만 열렸지 않나. 이번에는 지방에서 열린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무조건 오고 싶었다”며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서 개최하니까 의미도 남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선생님들과 새벽 3시부터 이곳에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오후 5시 반께 공연장으로 들어서자 4만 여명의 관객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들의 손에는 아이스박스와 돗자리, 음료수가 자연스럽게 들려있었고 곳곳에 경찰, 소방대원, 경호원 등 수 백여 명이 대기하며 관객들의 안전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한 경호원은 “날씨가 더워서 사람들이 짜증을 낼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이 저희의 안내를 잘 따라주고 있다”고 높아진 시민 의식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컸지만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객석은 안정적이었다. 1분이라도 먼저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길 법도 한데, 관객들은 앞에 선 일행이 안전하게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주었다. 다른 콘서트장에서 볼 수 없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은 박명수가 EDM(electronic dance music)으로 시작을 알렸다. ‘EDM 공장장’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가 특별 무대를 꾸며 열기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다. 프로라기보다는 아마추어의 향기가 났지만 역시 ‘EDM 덕후’답게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유재석과 이적, 박명수와 지드래곤, 아이유, 정형돈과 양평이 형이 뽑아낸 무대는 추억으로 덮힌 과거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을 안겼다.
객석의 열띤 환호가 이어지며 황태지(황광희 태양 지드래곤)의 ‘맙소사’, 이유 갓지 않은 이유(박명수 아이유)의 ‘레옹’, 으뜨거따시(하하 자이언티)의 ‘스폰서’, 상주나(정준하 윤상 다빈크 스페이스 카우보이 효린 주민정)의 ‘My life’, 댄싱 게놈(유재석 JYP)의 ‘l'm so sexy’, 5대 천왕(정형돈 밴드 혁오)의 ‘멋진 헛간’ 순으로 공연이 펼쳐졌다. 관객들은 뮤지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요제를 향한 적극적이고 무한대의 여유를 보여줬다. 멤버들은 혹여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가수들에게 피해가 가진 않을지 걱정하며 혼신을 다한 무대를 선사했다. 랩 실력이 부족했던 정준하와 흥은 충분하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던 유재석은 각각 윤상, 박진영에게 특별훈련을 받으며 실력을 끌어올렸다. 광희의 춤사위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날 유재석은 방송 녹화가 모두 끝난 뒤에도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올라 팬들이 안전하게 귀가할 것을 재차 요청했다. ‘국민 MC다운’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더불어 정형돈은 여섯 번째로 무대를 꾸민 뒤에도 퇴장하는 관객들의 뒤통수에 혁오와 함께 ‘멋진 헛간’을 다시 부르며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TV로 보면 반드시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무도가요제’를 온 몸으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현장을 찾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purplish@osen.co.kr
김경섭 기자 greenfiel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