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역사상 인기 1순위는 항상 청순하고 예쁜 멤버의 몫이었다. 90년대 1세대 아이돌들의 경우만 봐도 S.E.S에서는 유진, 핑클은 성유리 등 각 그룹을 대표하는 미모의 멤버들이 있었고, 이들의 팬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물론, 다른 멤버들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간판이라 칭할 수 있는 멤버는 한정돼 있었다. 그에 따라 노래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인보컬 멤버들이 그 실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메인 보컬들의 위상은 단순히 ‘예쁜 멤버’의 그것을 뛰어넘는 분위기다. 특히 요즘 걸그룹들은 기본적으로 각자 자신만이 가진 고유한 개성과 끼로 ‘어필’을 한다. 미모는 기본이다. 팬들의 취향도 다양화 돼 각기 자신의 취향에 맞는 멤버들에게 애정을 쏟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노래를 잘하는’ 보컬들은 자신들의 팬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에이핑크 정은지다. 정은지는 전형적인 청순가련 미인 형이 아님에도 에이핑크 내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한다. 물론 이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첫 드라마 tvN ‘응답하라 1997’의 영향이 크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H.O.T를 좋아하는 당찬 여고생 성시원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에이핑크 정은지’가 큰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보컬 트레이너를 꿈꿀 정도로 탁월한 그의 노래 실력이다. 단순히 사투리 연기를 잘하는 ‘끼’ 있는 아이돌 멤버인 줄만 알았던 그가 웬만한 실력파 가수에 버금가는 노래 실력을 보이자 그에 대한 평가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었다. 연기도 잘했던 이가 노래도 잘하니 주목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지켜보는 이들의 입장.
메인 보컬의 인기가 높은 걸그룹은 생각보다 많다. 이들의 인기 순위가 그룹 내에서 꼭 1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1,2위를 다툴 정도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소녀시대 태연부터 시작해 AOA 초아, EXID 솔지, 씨스타 효린, 걸스데이 민아, 여자친구 유주 등이 그렇다. 이들은 각 걸그룹을 대표하는 목소리로 사랑을 받고 있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을 뿐 아니라 초창기부터 팬덤을 형성하는 데 선두주자 역할을 했었다.
이처럼 메인 보컬들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요관계자들은 팬들의 취향이나 입맛이 다양화 됐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요즘 팬들은 가수들의 실력도 많이 보는 거 같다. 또 실력도 실력이지만, 각자 자신이 딱 꽂히는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오로지 ‘비주얼’에만 맞춰 가수를 좋아했다면, 요새는 취향에 따라 다르다. 그 때문에 실력이나 끼가 출중한 메인보컬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 게 아닐까?”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들어가 ‘여덕’(여성 가수를 좋아하는 여자 팬)이라 부르는 여성 팬들의 증가에 주목했다. 그는 “팬 층은 그룹의 성격마다 다르다. 예전 걸그룹의 경우, 남자 팬들만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전반적으로 여자 팬들이 더 많다. 여자 팬들은 아이돌들을 보면서 자신이 갖고 있지 않았던 어떤 모습을 찾고, 동경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자신을 에이핑크의 팬이라 밝힌 한 30대 초반 남성 팬은 메인 보컬의 인기 배경에 ‘복면가왕’이나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 등과 같은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가수다’ 이후에 보컬들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 같다. 요즘에는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걸그룹의 메인 보컬들이 노출 빈도가 많다보니 인기를 얻는 게 아닌가 싶다. ‘예쁜데 노래도 잘하네?’ 하는 생각이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메인 보컬들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아이돌 가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층 폭넓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제 아이돌 가수들은 단순히 수동적인 느낌의 ‘예쁜 상품’을 뛰어넘어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능동적인 개인사업자(?)다. 이들은 노래를 하고, 랩을 하고, 연기를 하고, 예능감을 발휘하며 팀을 떠나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다. 노래를 잘하는 멤버의 경우엔 솔로 앨범을 발매해 개별 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도 있고, 아이돌이라는 딱지를 떼고 ‘실력파’라는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 굳이 ‘얼굴 담당’, ‘노래 담당’을 따지며 서로 비교하지 않아도 재능있는 아이돌 멤버들이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긍적적인 신호다. /eujene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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