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라이트] '암살교실', 황당하고 얄궂은 담임 암살작전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5.08.14 18: 30

*이 기사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졸업 전에 담임을 죽여라!'
이 황당무계한 미션이 중학교 3학년의 한 학급에 주어졌다면? 성공하는 이에게는 무려 1000억원이라는 현상금까지 주어진다. 물론 담임은 인간이 아닌 달을 폭파시킨 초생물이요, 내년이면 지구도 송두리째 파괴하겠다는 괴물이다. 영화 '암살교실'(감독 하스미 에이이치로)은 이런 만화같은 상상력으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암살교실'은 지난 13일 서울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진행된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지구의 종말을 선사할 초생물의 등장에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군대의 모습이 등장하는 초반부는 진지하고 묵직하다. 하지만 그걸로 끝. 이후 영화는 초생물이 쿠누기가오카 중학교 3학년 E반의 담임 '살선생'이 되고, 직접 제안한 미션을 즐기면서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흘러간다.
당연히 누군가를 단 한 번도 죽여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는 담임인 '살선생'이 직접 암살을 가르친다. 자신을 죽이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절하게 암살의 A부터 Z까지를 가르치고 노력하는 모습은,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김고은 분)에게 자신이 부모의 원수라는 사실을 밝히고도 검술을 가르치는 월소(전도연 분)의 무게감 따위는 (당연히) 안중에도 없다.
더욱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직면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국영수는 물론 과학, 가정 등의 수업을 소홀히 하지도 않는 '살선생'은 가히 프로다. 1년 뒤 '살선생'을 죽이지 못하면 지구 종말이 오는 데, '그게 다 뭔소용'이냐고 부르짖을 지도 모르겠다만, 한국이나 일본 같은 '입시 지옥' 국가에서 중3에게 암살만 달랑 가르쳤다가 학부모들에게 살해를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기에 이해하자.
소재와 제목으로 짐작 가능하겠지만, '암살교실'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심지어 누적발행부수 1000만부를 돌파한 마츠이 유세이의 만화가 바로 그 원작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영화화 되면, 늘 기존 팬들에게 실망을 안기는 게 다반사. '암살교실'도 이같은 궤도를 크게 달리하지 않는 모양새다. 일단 싱크로율에서 아쉬움이 꽤 많다. ('암살교실' 자체가 지나치게 미소년, 미소녀들이 등장하다보니 현실에서 싱크로율을 기대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작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이 힘든 주인공 나기사 역할은 일본의 연기돌 야마다 료스케, 카에데 역은 야마모토 마이카가 맡았다. 붉은 머리 카르마는 스다 마사키, 과학소녀 마나미는 우에하라 미쿠다. 전학생1 자율사고 고정대표는 하시모토 칸나가, 전학생2 이토나는 카토 세이시로가 각각 연기한다. 이리나 예라비치는 걸그룹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이 분한다. 금발의 킬러에서 미녀 교사로 전직하는 원작의 매력적인 캐릭터다.
캐릭터 이름에서 느껴지듯 국적 불명에 금발인 상태로 등장하는 '이리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적절히 섞어서 사용, 현지인처럼 완벽하지 않은 일본어 연기가 전혀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다. 예측불허의 엉뚱한 성격과 행동 탓에, 과장된 연기도 웃어 넘길 수 있다. 남다른 몸매로 섹시를 무기로 내세워 암살을 시도하는 원작 캐릭터와 달리, 강지영의 '이리나'는 이 부분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가슴이 파인 옷으로 볼륨이 드러내고, 이를 몰래 훔쳐보는 '살선생'의 장면이 살아있다는 데 만족하자.(영화가 끝나고 등장하는 메이킹 영상에는 강지영의 '애교'있는 춤사위도 등장하니 절대 놓치지 말것.)
긴 분량의 만화가 110분의 런닝타임으로 확 줄어든 탓에 특정한 에피소드만 살아남아 '살선생'과 학생들의 끈끈함이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과 걱정이 남는다. 소재는 분명 황당하고 얄궂지만, 후반부에 반 강제적으로 관객에게 밀어넣는 일본 특유의 (어쩌면 이런류의 영화 대부분이 시도하는) 감동 코드는 여전히 매복 중이다. 이를 위한 복선도 곳곳에 심어뒀다.
독특한 설정과 참신한 캐릭터로 일본에서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등 현지에서는 인기를 누렸던 작품이다. 최근 폐막한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유럽판타스틱영화제연맹(EFFFF) 아시아 영화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런 류의 일본 영화를 평소 즐겼거나, 요즘들어 삶이 지치고 무료한 이들에게 부담없는 관람을 살짝 권한다. 나름의 메시지도 있지만, 역시나 큰 기대는 말라. / gato@osen.co.kr
'암살교실' 포스터 및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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