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케미’다. 남은 건 두 주연 배우 하지원과 이진욱의 완벽에 가까웠던 호흡뿐이다. 달달하면서도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물에 최적화 된 두 배우는 산으로 가는 드라마 내용에도 불구, 최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어렵사리 ‘로코퀸’, ‘로코킹’의 자리를 지켰다. 드라마와 함께 무너지는 것 아닌가 걱정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제 역할을 해내며 배우로서의 소명을 다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종영이다. SBS 주말드라마 ‘너를 사랑한 시간’(이하 ‘너사시’)은 지난 16일, 16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높은 기대 속에 좋은 분위기로 출발했던 작품었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PD의 하차 번복과 두 번이나 있었었던 작가 교체를 겪는 등의 갈등을 겪으며 지지부진한 전개와 도대체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로 혹평을 받으며 추락했다.
이 드라마는 인생의 반을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연애불가’ 상태로 지내온 오하나(하지원 분)와 최원(이진욱 분)이 겪는 아슬아슬한 감정들과 성장통을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다. 대만드라마 ‘연애의 조건’(아가능불회애니)를 원작으로 한 작품.
주연을 맡은 배우 하지원과 이진욱의 출연과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시작부터 큰 관심 받았다. 특히 설레는 감정을 극대화 하는 고급진 영상미가 인상적. 로코물의 적격인 두 배우의 근사한 비주얼을 그럴싸하게 담아내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오히려 장면이 아름다울수록 욕을 먹는 기현상일 벌어지기도 했다. 산으로 가는 내용 탓에 억지스럽다는 평에 힘이 기운 것. 하지원의 화장을 지워주는 이진욱의 ‘클렌징신’이 대표적이다.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 애를 쓴 꼴이 됐고, 배우들은 기억에서 클렌징하고 싶은 오그라드는 장면의 주인공이 돼야 했다.
그래도 하지원과 이진욱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예쁘긴 했다. 진짜 오하나(하지원 분)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이진욱의 눈빛 연기는 많은 여성 팬들을 TV 앞에 붙잡아뒀고,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하지원의 러블리한 매력은 리모컨을 조금 더 붙잡고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런 하지원인데, 갑자기 격변한 내용 탓에 졸지에 ‘국민 밀당녀’가 되기도 했다. ‘자기 주관이 강하고 당차며 도전적이’라는 인물 설정과는 달리 오하나(하지원 분)은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치게 만들었다. 자신을 17년 동안 바라본 최원(이진욱 분)과 3년 전 이유도 모른 채 헤어져야 했던 전 남자친구 차서후(윤균상 분)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미련이 남았던 차서후를 택했다. 그러면서도 최원을 거부하지 않는 ‘어장관리’식 태도로 밀당의 정석을 보여준 바다. 이러한 피곤한 로맨스는 종영의 전 상황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회를 한 회 남겨놓은 지난 15일 방송에서부터는 하나와 원의 연애가 급물살을 탔다. 두 사람은 15회에 이르러서야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한 회 만에 청혼하고 결혼하고 임신까지 성공했다. 의심스럽지만 극의 분위기가 행복해 보이니 해피엔딩은 맞는 것 같다.
내용이 어떻든 그래도 하지원 이진욱인데, 명장면이 없을 수 있나. 최원이 기내에서 하나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 집 앞 거리에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그림처럼 예쁘고 설렜다. 원은 출장을 떠나려 비행기에 몸을 실은 하나 앞에 깜짝 등장해 무릎을 꿇고 반지를 선물하며 프러포즈 했다. 또한 17년간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원에게 걸어하는 하나의 모습도 왠지 모를 뭉클함을 자아냈다. 결혼 이후 부부가 돼 친구처럼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열연도 만신창이가 된 드라마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결국 하지원과 이진욱은 '너사시'를 통해 '케미'만을 남기게 됐다.
한편 이날 종영한 '너를 사랑한 시간'의 후속으로는 김현주 지진희 이규한 등이 출연하는 '애인있어요'가 방송된다. '스캔들' '반짝반짝 빛나는' 등을 집필한 배유미 작가의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제작진의 교체가 없길 바란다./joonamana@osen.co.kr
'너사시'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