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연자실 ‘협녀’ 감독님, 혹시 ‘냉부탁’ 보시나요?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08.17 07: 03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이병헌 주연 ‘협녀, 칼의 기억’이 비상한 관심 속에 개봉했지만 예상을 밑도는 초라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지난 13일 지각 개봉한 이 영화의 첫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는 6위. 규모 면에서 몇 체급 낮은 것으로 평가된 ‘미쓰 와이프’에도 뒤지며 사실상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사흘간 모객 수는 고작 33만 명. 이병헌이 송승헌에 뒤진 것이다.
‘협녀’를 응원한 일부 팬들과 영화 관계자들에겐 ‘역시 관객은 냉정하다’는 뼈저린 교훈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 수치였을 것이다. 이병헌 전도연이라는 초특급 선수들과 무협이라는 범상치 않은 장르, 여기에 100억대 제작비가 뒷받침됐는데 왜 이렇게 공든 탑이 쉽게 허물어진 걸까.
 많은 이들은 50억 소송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이병헌의 탓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주연배우의 하락한 호감도가 영화의 패인으로 거론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협녀’의 모든 허물을 한 배우가 뒤집어쓰는 게 과연 온당한 처사일까. 이 역시 지나친 마녀 사냥 식 접근은 아닐까. 이병헌의 연기 외적인 과실이 분명히 있겠지만, 좀 더 냉정하게 ‘협녀’를 복기해본다면 이병헌 리스크 뒤에 숨어있는 진짜 패인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지난 주말 ‘협녀’를 재관람 하면서 관객들이 영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 같은 엇박자 분위기가 여러 번 감지됐다. 관객들은 아직 티슈 꺼낼 준비가 안 됐는데 배우들은 슬픔에 북받쳐 앞질러 울고 있는 식이다. 객석에서 ‘왜 저래?’라는 탄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했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배우라도 신 바이 신에 대한 인과 관계가 허술하면 관객을 설득하지 못하는 법인데 ‘협녀’가 딱 그랬다. 불쑥불쑥 끼어든 과거 회상 신도 몰입감을 저해하는 수준이었다.
한때 ‘와호장룡’ 뺨친다고 소문난 무협 액션 장면도 손발을 오글거리게 했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김고은의 연기는 감탄 대신 실소가 여러 번 터져 나왔다. 와이어만 살짝 지운 티가 역력했고, 지붕 위를 자유자재로 점프하는 모습은 흡사 90년대 전자오락실에서 본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인공들의 검술 실력도 누가 합을 짜줬는지 좌우왕복 같은 패턴만 무한 반복돼 단조로움을 가중시켰다.
 영화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음악 역시 ‘협녀’에선 제대로 기능하지 못 했다. 마치 ‘자 여기서부터 웅장해질 겁니다’라고 확성기에 대고 얘기하는 것처럼 여러 번 앞서나갔고 관객과 엇박자를 내기 바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경음과 혼자서만 잔뜩 심각해진 리듬 탓에 휴대폰 액정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이때였다. 음악에 대해 전문가 식견을 갖고 있는 이재한 류승완 감독에게 ‘협녀’ 관람을 만류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협녀’ 감독과 제작진들의 억울함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다. 투자사 압박에 긴 러닝타임을 줄이는 편집 과정에서 몇몇 중요한 감정신이 날아가고 줄어들다 보니 타이트해야 할 드라마의 긴장과 완성도가 다소 훼손됐을 것이다. 하지만 학술제에 임하는 아마추어가 아닌 상업 무대 프로들이라면 온갖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했고, 편집 지점에 대한 고민 역시 투자사 보다 깊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그 부실함은 참혹함으로 이어졌다. 극중 맹인 검객으로 나온 전도연이 빈 붓으로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이병헌의 얼굴을 그리는데 피가 화선지에 번지며 마침내 그림이 공개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객석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여주인공의 억압됐던 감정이 폭죽처럼 한 순간에 터지는 하이라이트였음에도 앞에 깔아놓은 개연성이 부족하다보니 처연함이 전혀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꾸미지 않은 내추럴한 연기가 트레이드마크인 김고은 역시 영화의 톤 앤 매너에 전혀 녹아들지 않아 혼자 튀는 듯한 인상을 줬다. 선머슴 같은 천방지축 캐릭터까진 볼만 했지만 중반부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특히 출생의 비밀을 접한 뒤 겪게 되는 딜레마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애잔함을 표현하는 데에도 한계가 확연했다. ‘은교’ ‘차이나타운’에선 영화에 잘 스며든 반면, ‘몬스터’에 이어 실질적인 주인공인 ‘협녀’에선 다시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기본기 부족을 드러냈다.
시나리오부터 편집, 음악, 무술, 배우들의 아쉬운 디테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감독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에 대한 책임이 결국 지휘자에게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협녀’ 박흥식 감독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에 이어 이번이 전도연과의 세 번째 작업이었다. 현재 롯데가 투자하는 한효주 주연 ‘해어화’를 찍고 있다.
분주하겠지만 혹시 짬이 난다면 박 감독에게 시청률 5%를 사수하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권하고 싶다. 요즘 흔해빠진 셰프테이너를 내세운 단순한 요리 대결 프로가 아니다. 대중이 뭘 궁금해 하는지, 손님으로 나온 연예인을 어떻게 치켜세워주는지, 다른 프로 기웃거리지 않아도 될 만큼 출연 셰프들을 한껏 폼 나게 해줄 줄도 안다. 적어도 프로 세계의 무림 고수라면 주어진 예산을 존중하고 자본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협녀’에 100억이나 퍼부은 롯데는 무슨 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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