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아성이 서늘한 호러퀸으로 변신했다. 고아성의 자연스러운 얼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강력하다.
17일 오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오피스'(홍원찬 감독)가 공개됐다. 극 중 고아성은 회사 영업직 인턴 사원 이미례를 연기하며 본인이 가진 장기를 십분 발휘한다.
조각 미녀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얼굴의 소유자인 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들을 디테일한 표정을 통해 공포로 돌변시킨다. 남보다 특별히 못나지는 않았지만 결코 잘나지도 않은, 열등감에 찌든 이 인물에 숨을 불어넣는다. 마치 내 옆에 있는, 혹은 내 자신일지도 모르는 이 인물이 공감을 더하는 것은 이런 일상 얼굴의 힘을 지닌 고아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임시완)가 순진한 얼굴과 말투에 뭔가 주눅들어 있는 표정으로 동정심을 자극했지만 정작 회사의 히어로 역할을 했다면 '오피스' 속 이미례는 정말로 미생이다. '오피스'가 '미생'과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회사의 정서다. 장그래가 아무리 핍박받는 환경에 있을지언정 회사의 정서는 따뜻했던 반면 '오피스'의 회사는 차갑고 메마르다. '미생'에서 감동적인 부분들을 모두 걸러낸다면 굳이 노력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이 같은 호러 버전이 탄생했을 것만 같다.
이미례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눈치없고 한심하다고 욕하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오로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전환이 인생 최대 목표인 상황에서 치명적인 라이벌이 등장한다. 그 라이벌은 이미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스펙과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센스까지 갖췄다. 이미례는 히스테리 폭발 직전의 인턴이 된다.
굳이 귀신이 튀어나오고 피가 낭자하다고 무서운 게 결코 아니란 건 사람들은 이미 잘 안다. 머리 뒤를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는 오히려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들에서 나오는데 당연히 믿고 있던 사람이나 상황의 배신,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갑작스러운 변화 등이 그렇다. 회사에서라면 해고 같은.
홍 감독이 말한 것처럼 '여고괴담'이 입시지옥을 호러로 풀었다면 '오피스'는 한국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스릴러 장르로 표현했다. '오피스'가 갖는 영화의 순기능이라면 관객이 가진 직장 스트레스를 상상을 통해 풀어주는 것일 테다. 공포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본인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
파티션이나 책상, 화장실은 서스펜스의 공간이, 야근은 공포의 시간이 된다. 고아성은 이 안에서 툭 건드리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자괴감에 사로잡힌 인물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동정과 공포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넋 나간 듯 상대방을 도발하다가도 한 순간 애잔한 어린아이처럼 돌변하는 이미례란 옷을 고아성이 제대로 입었다.
고아성, 배성우, 박성웅, 김의성, 류현경, 이채은, 박정민 등 출연. 15세 관람가. 27일 개봉. / nyc@osen.co.kr
'오피스' 스틸